1-2. 교육의 시작(1)
인류는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한때 배움은 개인의 감각과 경험 속에 머물렀다.
사냥터에서 몸으로 익히고, 별빛 아래에서 스승 없는 질문을 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배움은 각 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본능이었다.
언어를 통해 고인류의 배움은 획기적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언어의 힘은 시간이라는 장벽 앞에 흐려질 가능성을 가진 미성숙한 가르침이었다.
인류는 더욱 정교한 배움의 전이, 세대를 뛰어넘는 가르침이 필요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기록의 발명이다.
하지만 최초의 기록은 '생존을 위한 지식' 이전에,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의 오래된 동굴에서, 약 4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손바닥 그림이 발견되었다.
사람의 손바닥을 벽에 대고, 그 위에 입으로 붉은 안료를 불어 입자들을 남긴 형태로 그려진 이 그림은, 주로 붉은색과 주황색 안료(철 성분)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여러 손바닥이 겹쳐지거나 흩어져 있는 이 그림들은, 마치 고인류가 '나는 여기 있었다'는 존재의 선언을 남긴 것처럼 보인다.
손바닥을 벽에 대고 숨을 불어 흔적을 남기는 행위는, 어쩌면 인간이 자기 존재를 세상에 새긴 가장 원초적이고도 신성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인류가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이름을 새기거나 낙서를 남기려는 충동 또한, 어쩌면 고인류로부터 이어져온 깊은 유산일지도 모르겠다.
정교해진 인간의 뇌는 다양한 사고와 의식의 흐름으로 발전해 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깊이 사유하고 성찰하며, 무언가를 남기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이 일종의 '낙서'는, 인간이 더 위대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기록의 시작이었다.
약 4만 년 전, 지구는 아직 순백의 옷을 갈아입지 못한 채, 춥고 황량한 빙하기를 지나고 있었다.
당시 인간은 생존 가능한 장소를 찾아야 했고, 그 가운데 동굴은 자연이 제공한 훌륭한 안식처였다.
바람과 비를 막아주고, 천적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외부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포유류 조상들처럼 인간들은 밤이 되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이어나갔다.
그런 동굴은 그들에게 단순한 쉼터를 넘어, 초월적 공간이 되었다.
깊숙한 어둠, 울림, 서늘함은 자연스럽게 신성함이나 다른 세계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이런 환경은 인간에게 사냥의 성공, 풍요, 죽음과 재생 같은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1940년, 프랑스 남서부에서 발견된 '라스코 동굴 벽화'는 약 600여 점의 그림과 1,500개 이상의 조각, 상징적 기호들로 가득하다.
가히 '인류 최초의 미술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그곳을 가득 채운 수많은 그림들은 단순한 낙서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동굴 벽의 그림들은 소, 말, 사슴, 들소, 매머드 같은 대형동물들을 주로 묘사했고, 그 표현 기술은 상상 이상으로 정교했다.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동굴 벽의 곡면을 이용하기도 했고, 원근법의 기초적 형태까지 사용되었다.
또한 다양한 색조로 채색했는데, 이는 여러 광물을 곱게 갈아 만든 안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붓 대신 입으로 분사하거나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기법도 사용했다.
아마 숙련된 전문 벽화팀이 조를 이루어 작업했으며, 이들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어둡고 황량했던 동굴 안을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채워나갔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그들이 그림을 그린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거나, 동물의 영혼과 교감하거나, 생명의 순환을 기리는 의례적 의미를 담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새처럼 묘사되어 있거나, 들소가 상처 입어 쓰러져 있는 모습은,
단순한 사냥 장면을 넘어 죽음과 영혼, 다른 세계로의 이동 같은 복잡한 주술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이유가 무엇이었든, 인간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자신과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예술적·종교적 사고를 가지기 시작했음은 분명하다.
그 시절 인류의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가 이 벽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그들이 그림을 그린 목적을 떠나,
후대의 인간이 선조들이 남긴 흔적을 분명히 보고 배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은 황소의 모습, 사냥의 방법, 삶과 죽음을,
언어를 통해 듣고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각적인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이야말로 진짜 기록의 탄생이자,
가르침을 위한 최초의 교육자료였다.
이제 배움은 시간을 초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림과 기록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사용하기 시작한 대부분의 문자가 '상형문자'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림은 곧 기록이었다는 말이 이해될 것이다.
초기 인류는 그림을 통해 공동체의 경험과 기억을 전승하고, 새로운 지식을 쌓아갔다.
그들은 더 나은 생존 방법을 터득했으며, 나아가 계급과 신앙, 그리고 사회 계층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갔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난해지자, 인간은 마침내 동굴 생활을 청산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수만 년 전 처음 동굴 안으로 들어갔던 인간과, 동굴 밖으로 나온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시간을 초월한 배움을 통해, 그들은 수만 년 동안 축적된 지식을 터득한 상태였다.
더 똑똑해진 인류는 온난하고 안정된 기후와 깊어진 사유를 바탕으로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식량이 풍부해짐과 동시에 유목 생활과 사냥·채집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졌고,
그들의 그림 또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별과 달, 태양의 그림들이 많아졌고,
신성함의 대상은 동물에서 하늘로 옮겨갔다.
동굴의 벽 대신 나무와 돌, 스스로 세운 벽과 기둥에 그림을 그렸고,
그릴 수 있는 캔버스는 이제 동굴보다도 훨씬 풍부해졌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관찰할 대상 또한 풍부해졌다.
정착과 함께 울타리가 생겨나자 인간은 더욱 많은 것들을 바라볼 여유를 얻었다.
숲과 나무, 하늘과 새, 물과 물고기,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광활한 코스모스...
그들은 주변의 세상 만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은 점차 규칙성을 띠며 단순화되었다.
간단한 선이나 도형으로 자연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 간단한 표현 방식은 공동체 속에서 보편화되고 전승되기 시작했다.
이 놀라운 행동이 반복되면서,
인류에게 '문자'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