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문명의 조건

1-2. 교육의 시작(2)

by 더블윤

1만2000년 전, 지중해의 동쪽과 이란 고원의 서쪽에 위치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 구약 성서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도 묘사된 이 축복받은 대지에 위치한 강들은 해마다 생명의 진흙을 쏟아냈다. 그 진흙들이 길러내는 수많은 곡물과 열매들은 자연스레 주변의 모든 생물들을 모여들게 민들었다. 그 생물들 중엔 당연히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은 사냥터이자 채집터였던 그 땅은 인간의 개체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지만, 곧 수렵과 채집만으로는 그 땅에 살고있는 모든 인구를 부양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인간은 선택해야 했다. 늘 행해왔던 방법대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쪼개 이주를 시키던지, 아니면 새로운 식량 확보 방법을 찾아내던지...

비옥한 초승달 지대. 미국의 역사가 제임스 헨리 브레스테드에 의해 제안된 '아칭'이다.


하지만 그 당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정착하게 된 인간들은 이주를 선택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 땅을 축복받은 땅이라 여긴 종교적 신념이 있었거나, 아니면 이보다 나은 땅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울거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들은 선택했다. 자신들의 오래전 깨달음과 지식을 활용하기로.


인간은 강이 선물해준 진흙위에 씨를 뿌리고, 그 위에 최초의 밭을 일구었다.
농업 혁명의 시작이었다.

인간은 밭을 넓혀갔고, 넓어지는 밭은 인간을 길러냈다. 인간은 자신들이 일구는 밭 주변에 정착하며 더 큰 공동체를 이루었다.
공동체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자 식량, 재산, 거래, 의식, 통치 등 관리해야 할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연히 인간의 언어, 구술만으로는 이 복잡한 정보를 전승할 수 없게 되었고, 정확하고 영속적인 기록 수단, 즉 '문자'가 필요해졌다.




농업혁명으로 인간은 본격적인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인류의 점점 더 커져가기 시작했다. 공동체가 커져간다는 것은 질서유지, 조화와 통치 등이 점점 더 복잡해져야 함을 요구했다.
치안 유지, 공공 노동(관개 시설, 수로 공사), 제사와 종교 의식 같은 공공의 일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다.
공동체의 책임자는 이러한 원시 공공사업을 이끌어 나가기엔 인력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자원을 조금씩 부담하는 개념이 생겨났다. 바로 '세금'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초승달 지대의 인류 공동체는 점점 더 커져갔고, 기원전 3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 지역(우루크, 라가시, 우르 등)에서 세계 최초의 도시국가가 등장했다.
이 도시국가들은 농민들에게 곡물, 가축, 노동 등을 일정 비율로 요구했다. 이를테면, 수확량의 일정 비율을 신전이나 왕에게 바쳤고, 이 세금은 신전 경제를 유지하거나, 관개 시설을 관리하거나, 군사 활동에 사용되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국가운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수십만년이란 긴 세월동안 사냥과 채집 기술만을 가지고 있었던 인류가 농업혁명이 일어나자 마자 어떻게 이런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가 뭘 얼마만큼 받았는지?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
누가 어떤 소를 빌려갔는지?
공동체가 커져가고 원시 공공 사업을 시작하자, 이러한 모든 것들이 말로만 기억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고, 인간의 기억은 쉽게 흐려져 갔다. 이는 문자의 사용을 인간들에게 강요했고, 인류에게 있어 문자의 사용은 인간의 "사유"가 아니라 "증거"를 남기려는 욕망에서 태어났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 문자 또는 설형 문자(cuneiform, 楔形文字)


최초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자는 '픽토그램(Pictogram)', 즉 그림 문자였다. 즉, 그림을 그려서 정보를 남기고 전달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그림이 점점 간략화되고, 쐐기 모양의 기호(설형) 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그림이 '표의 문자'의 형태로 진화된 것이다.
그런데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 이름, 계약 내용, 세부 사항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기록해야 했다. 형태 없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림 하나가 '뜻'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소리)를 나타내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통치, 세금, 무역 등의 공동체의 사회 발전은 문자의 탄생과 함께 문자의 진화를 이끌었다. 대표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설형문자는 표의문자와 표음문자의 복합체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자, 이것은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능력. 누군가는 이것을 '거짓말'이리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 의식, 감정, 꿈 등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지금의 인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그것을 말이 아닌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문자는 종교 의식, 왕의 업적, 신화와 이야기 같은 문화적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재료가 되었고, 이는《길가메시 서사시》라는 인류 최초의 서사문학 작품까지 등장시킨다.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인간이 시간과 망각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든 최초의 방패였다.
그림이 존재를 기록했다면, 문자는 세계와 만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손바닥으로 동굴에 흔적을 남겼던 존재에서, 이제 문자를 배우고 가르치며, 시간을 가로질러 자신의 세계를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문자는 문명이라는 거대한 성벽의 벽돌이 되어 주었고, 그 성벽 안에서 인간의 배움은 점차 교육이라는 완성된 체계를 통해 점점 더 정교해져갔다. 기록은 유산이 되어 후대에 전승 되었고, 인간은 그 유산위에 덧칠을 해가며 아름다운 지식의 미술품을 완성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거대한 책, 이 책은 이 땅을 밟아간 모든 인류가 함께 써내려가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지식이며,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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