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요구,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교육

1-2. 교육의 시작(3)

by 더블윤

문자는 인간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기억으로 전승되던 생존의 방법은 더 이상 희미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언어를 통한 상호 이해를 넘어, 문자와 기록을 통해 집단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문자를 통해 물품 목록, 거래 기록, 가격 협약을 남길 수 있게 되자, 소규모 공동체 간의 물물교환은 먼 지역과의 장거리 무역으로 발전했고, 인류는 비로소 최초의 경제권(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별자리 관측, 농업 주기, 수학 계산 등 고대의 과학적 지식이 문자로 정리되었고, 개인의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체계적 지식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문자가 이루어낸 가장 위대한 일은 종교의식, 신화, 제사의 복잡한 내용들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공동체의 정신적 일체감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제안한 개념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뇌 크기(특히 신피질의 크기)와 사회적 집단 규모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인간의 뇌 크기, 특히 사회적 관계를 관리하는 신피질의 크기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최대치는 약 150명이다.
실제로 인류 초기 공동체인 수렵·채집 사회를 분석해 보면 평균 100~200명 규모의 집단(밴드, 부족)으로 조직되었고, 이를 넘어서는 순간 내부 분열이나 새로운 집단 형성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규칙, 제도, 지도자, 종교 같은 추가적인 '사회적 접착제'였다는 것이 대부분 인류학자들의 견해이다.




문자 이전에는 신에 대한 기억, 계시, 전통이 모두 구술로만 전해졌다. 하지만 인간의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고, 망각되며, 변질되기 쉬웠다.
그러나 문자를 통해 신화, 율법, 교리를 기록하게 되면서 신앙 체계의 일관성과 통일성이 생겨났고, 신앙은 단순한 개인적 믿음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통합 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작게 흩어져 있던 인류 공동체는 신의 사자, 혹은 신의 아들이라 여겨졌던 지도자의 통치 아래 그 크기를 키워가며, 흩어져 있던 의식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커질수록 인간의 지배층은 공동체의 통제와 질서 유지를 위해 규칙, 약속, 법, 거래를 명확히 기록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문자는 법률, 계약, 재산 기록, 세금 관리 같은 복잡한 행정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드는 훌륭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 대규모 사회(도시, 국가)를 유지하고 통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게 된다.

세상을 기록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를 통제하는 방법을 익히자, 인간은 그 힘을 다음 세대로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수하기 시작했다.
교육은 이제 우연한 배움이 아니라, 권력을 지키고 세상을 다스리는 체계가 되어갔다.




문자는 문명의 교육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시작되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시작된 교육은 다름 아닌 문자 자체에 대한 배움이었다.

문자는 이미 사회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어 있었다. 세상을 기록하고 다스리려면, 먼저 세상을 읽을 수 있어야 했고, 세상의 기록 방식인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야만 했다.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사회 전체를 이끌고, 법과 제도를 시행하는 힘 그 자체였다.
그래서 문자는 곧 통치 기반이 되었고, 문자를 배운다는 것은 권력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이유로 어린 백성이 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고자 해도
끝내 제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날마다 사용하여 편안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 훈민정음 서문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서문은 문자가 가진 힘과 그 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 중기에 들어서야 훈민정음 덕분에 많은 백성들이 글(훈민정음, 즉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조선의 조정은 한문을 사용하며 백성들에게 권력의 분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거의 모든 초기 문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자를 습득할 수 있었던 자들은 극소수였으며, 주로 성직자, 관료, 왕족 같은 공동체의 상층부 사람들만이 이 지식을 전수받았다.
이들은 문자라는 무기를 손에 쥔 채, 공동체의 질서와 권위를 정립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다져나갔다.

훈민정음 해례본. 돌이켜보면, 한 나라의 국왕이 국가의 통치 권력을 백성에게 나눠주려 했다는 점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일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인류 최초의 제도적 교육이 탄생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를 유지하고 통치 질서를 세우는 도구로 등장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작인 수메르 문명에서는 '에둑'이라 불리는 고대의 학교에서 설형문자, 수학, 기록 관리 등을 교육했다. 이는 모두 문명의 통치와 관련된 학문이었고, 당연히 일부 상류층의 자녀들에게만 이 ‘특권’이 허락되었다.
다른 문명에서도 교육은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이집트 문명에서는 신전 부속학교에서 서기관 교육, 종교의식과 행정 문서 작성 교육 등이 이루어졌다.
이집트 문명이 그들의 종교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신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파라오의 옆자리에 설 수 있는 자를 양성하는 과정이었다.

저 멀리 동쪽, 대륙 반대편에서도 문명이 일어났고 교육이 시작되었다. 고대 중국의 교육은 궁정 내 사관 양성, 점복술(점을 치는 일), 통치 기술 교육이 중심이었으며, 마야 문명에서는 신전 중심의 천문학, 제사, 통치술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초기의 교육은 분명 소수를 위한 특권이었다. 문명의 가장 많은 구성원인 일반 시민들은 그저 농사를 잘 짓고, 생산 활동에 힘쓰며, 선택받은 지도자가 공동체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제도처럼 보이지만, 그 시절 대부분의 시민이 하루 종일 밭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농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구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교육의 혜택을 받은 대상이 누구였느냐가 아니라, 문명이 배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다.
이 체계적 배움의 시작이 기록이 되고, 책이 되었으며, 훗날 인류 모두가 지식을 나누는 초석이 되었으니 말이다.


비록 권력자의 손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문자와 교육은 결국 인류 모두에게 시간을 넘어 지혜를 잇고,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을 선물하게 된다.

지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책의 서문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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