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을 기다려라. 바닷속의 조개를 발견할 것이다.

- 작가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by 이채이


작가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이미 당신 안에는 작가가 존재한다. 무엇이 되기 위해 밖에서 무언가를 찾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보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찾고, 거기에 영혼을 불어넣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자신 안에 있던 형상을 본떠 인간을 빚었듯, 창조는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이상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천재로 태어났으나 점점 굳어 박제가 되어간다”고. 우리는 본래 가능성의 존재였지만, 살아가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잊어버리고 만다. 내 안의 천재를 찾아야 한다.

파도가 높으면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물결이 들끓을 때는 깊은 곳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꾸만 누구처럼 되려고 애쓰는 순간, 내 안은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성공한 방식은 제각기 다르고, 그것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인간을 동굴에 갇힌 죄수에 비유했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의자에 묶여 평생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며 살아간다고. 그러나 나는 우리가 그림자조차 볼 수 없는 '장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은유다. 보지 못하면 인식할 수 없다. 인식은 '알아차림'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가진 인식의 틀은 시각 경험을 제외한다. 그 제한된 틀로 과연 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우리는 망치를 들어 그 인식의 벽을 깨부수자고 말한다.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것', '너의 것'이라는 구분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쓸 필요조차 없다. 경계를 지운 모든 것이 자연스레 내 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이 곧 나의 것이 된다.


바다는 무수한 파도를 일으키고, 다시 잠잠해진다. 파도가 치는 동안엔 바닷속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썰물은 온다. 그때를 기다리며 독서를 하라. 독서는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책을 읽으며 내면을 준비하라. 그리고 썰물이 오면, 갯벌이 드러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조개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조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하루 두 번, 어김없이 썰물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