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손 안의 네모난 두 가지를 생각함

- 진계유를 떠올림

by 이채이

우리 손 안의 작은 사각형 갤럭시. 그 안에는 수많은 은하가 담겨 있다. 어쩌면 핸드폰 속 사진 한 장, 영상 하나는 수천만 광년 너머에서 빛을 던지는 별에서 시작된 신비의 역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손안에 주어진 무한한 신비를 느끼는 대신, 그 안에서 가장 가벼운 것, 가장 시끄러운 것만을 소비하려 한다. 무엇을 보는가 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무엇보다 절실해졌다.


“여름의 매미는 겨울의 눈을 논할 수 없다.” 시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너른 세상을 알지 못한다.”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너무 자주 ‘생각의 한계’에 자신을 가둔다. 갇힌 나를 꺼내줄 완벽한 열쇠는 또 다른 네모, 책이 아닐까.


생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더 자주 책을 찾는다. 흔들릴수록, 질문이 많아질수록, 나 아닌 타인의 지혜를 빌어 나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어린아이가 세상의 이치를 혼자 이해할 수 없듯이, 나 또한 나의 좁은 관점만으로 세상을 해석하기엔 참으로 불완전하다. 그럴 때 책은 나에게 비밀통로를 열어준다. 이미 수많은 사유를 거쳐 간 이들이 남긴 문장을 따라, 나는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위로받으며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핸드폰을 봐야 한다면, 적어도 질문이 담긴 예술을 보자.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순간에도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철학이란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일”이다. 질문이 없는 삶에는 성장이 없고 질문이 멈춘 곳에 사유도 멈춘다. 예술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우리를 무수한 타인의 관점 속으로 데려다준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나만의 시각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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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환 작가는 말했다.

한 편의 전시회를 보는 것은, 수십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그림 앞에서 사유하는 순간은 수많은 문장을 한꺼번에 넘기는 독서와 같다고.

이에 나는 명나라 문인 진계유를 소환하면서 호흡을 맞춰본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좋은 벗을 얻는 것이고, 이미 읽은 책은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다.


나는 진계유의 이 문장이 예술작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처음 마주하는 그림은 좋은 벗처럼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고, 다시 만나는 음악은 오래된 친구처럼 깊은 위로를 건넨다. 책과 예술을 통해 다져진 삶은,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을 준다. 그것이 바로 사유하는 독서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