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을 "나를 찾고 있는 방향성"이라 정의했다.
.
현타가 온다.
다들 어떻게 하기 싫은 일을 이겨내며 일을 하고 있을까?
하고 싶은 일보다 우선인 가족과 생계 때문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우리 아버지가 그랬듯이.
'폭싹 속았어요'에 나왔듯이 대다수가 자신의 자아는 먹고사는 일 나중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겠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왜 그거야?
가끔 의문이 든다.
내가 정말로 그림과 예술을 하며 살고 싶은 건지.
"우울증에 걸려서 죽기 직전이야"라는 말로 타협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객기인 건지.
구분이 안 간다.
내가 미술을 하고 싶은 이유는, 별거 없다.
재밌으니까?! 그릴 때, 그리는 선들이 재밌고, 선 위에 입혀지는 색칠이 예쁘면 더 재밌으니까?!
난 예쁘고 아름다운 게 좋다. 내가 그린 그림들이 그렇다고 예쁘고 아름다운 건 아니다.
추상화나 상상화 위주로 그렸기 때문에 난해함을 가지고 있다.
예쁜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건 어떠한가? 난 모작은 잘 못한다.
모작을 하되, 나의 해석이 들어간 그림을 좋아한다.
어떠한 주제에 선택된 그림을 재해석한 작품. 나의 의견, 스타일이 들어간 그림이 재밌다.
그래서 평범히 예쁘진 않다.
(평범히 예쁘지 않아서 작품을 게시하고 팔아볼 생각도 못했다. 자신감 부족의 이유도 있다)
이것을 볼 때 나는 표현하는 게 재밌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을 담아내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 말이다.
어렸을 때의 칭찬의 영향
@ 미술을 좋아했다.
그 처음의 기억은 5살 때,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무 그리는 방법이 나왔을 때이다.
그렇게 그린 나무는 네모와 동그라미에서 가지가 자라나고 잎사귀가 살아있는 풍성한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산 등선에는 나무 하나하나를 그렸다. 그 그림들로 처음으로 유치원에서 칭찬을 받았다.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가 선생님 한마디의 칭찬으로 얼굴이 새 빨게 졌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그 공간에서 소속됨을 느꼈다.
@ 초등학교 때 식목일 등 각종행사에 상장.
초등학교 교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 등 항상 상장을 받았다. 잘 그리는 그림은 지금 기억하기에도 아니었고, 그저 나의 상상이 담겼을 뿐이었다. 그래서 들었던 칭찬이 "와 정말 잘 그렸다! 근데 이건 어떤 걸 표현한 거야?"였다. 잘 그린게 봤을 때 잘 그렸다기보다는 신기함의 질문이 많았다. 나무 의사, 타행성 쌀농사 등 다양하게 상상하고 미숙하지만 그렸다. 꼼꼼히.
그렇게 자만하는 마음을 가지고 외부 그림행사에 참여했다. 박물관 그림 그리기에서는 입상, 지역 자연그림 행사에서는 탈락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그림 실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생님들께서는 그런 나의 그림을 좋게 봐주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세계지도를 A4용지에 그리는 숙제가 있었다. 당시 나는 세계여행을 하는 한국여성에 관한 책에 푹 빠져서 그 시리즈를 읽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흥미로운 주제의 숙제였다. 종이에 자를 대고 대륙의 위도 경도 위치를 맞추기 위해 꼼꼼히 그렸던 기억이 난다. 머리가 아플 듯이 집중을 하며 그렸는데,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다 완성하고는 정말 뿌듯했다.
그 그림을 보시곤 담임선생님께서는 "아뚝이는 그림 쪽으로 공부해볼 생각 없니?"라고 먼저 권유를 해주셨다. 그때 나는 착한 어린이로, 부모님 말씀 따라 미술은 아니고 공부를 할 거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지만 근자감이 있었다.
@ 고등학교 때, 홍익대 출신의 담임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냉정히 미술은 고3 수능 끝나서 해도 늦지 않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홍대 미대를 목표로 두고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전교 25등을 했었다. 이전엔 뚜렷한 목표와 목적을 몰랐는데, 한번 정하고 나니 해야 할 게 명확해졌고, 그렇게 공부를 했더니 좋은 결과로 나왔다.
교내 그림 행사에서 (담임선생님의 파워였는지는 몰라도) 금상을 받았다. 마그리트의 작품을 재해석한 그림이었다. 그릴 때 너무나 재밌었고, 친구들과 선생님께서 인정해 주시니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은 미술 분야는 결사반대였다. 그럴 돈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해하고 현실에 순응했다.
인정욕구의 결산물인, 그림?
인정받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형식적, 진심의 인정들이 있다.
가장 많은 사회에서의 칭찬은,
어머니를 챙기는 효심
그림을 잘 그렸을 때
글을 잘 썼을 때
이 정도 일까? 이외에서는 '착하다' 등등이 있지만, '넌 호구야, 바보야'로 들렸기 때문에 뺐다.
이 중 가장 기뻤던 기억은, 아마도 초6 때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셨을 때이다.
쓸모없이 느꼈는데,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셨다.
세계지도 그리기는, 지역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욕구를 반영한 결실이었다.
< 해외를 가고픈 욕구,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욕구 >
--------------------------
취미로 하면 되고, 요새 부업도 많아. 그러니까 사이드잡으로 해.
사회에 나오니, 난 대체품이었다. 있으니 없으니만 못한 사람.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각종 경력, 자격증, 사회생활 짬이 필요했다.
숨 막힐듯한 다람쥐들의 쳇바퀴에서 재빠르게 바퀴 굴리면서 도토리도 까야하고 도토리 요리도 해야 했다.
다들 탈진 안 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사무직 일을 하면서 일은 할만했다. 어려웠지만, 버텼고 익숙해지니 할만했다.
그리고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1인분의 몫을 하기 위해 나갔고, 그곳에 있었다.
삶의 기쁨은 모르겠더라.
왜 살아야 하는지,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더라.
부모님께 죄송한 얘기지만, 수도 없이 죽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리고 퇴사하고서도.
이럴 때 다들 무언가를 배우고 취미를 가져보라고 한다.
난 정말 다양한 취미를 도전했다. 러닝, 클라이밍, 등산, 수영, 배드민턴, 헬스, 독서, 영어공부 등 진득이 재밌게 오래 한 건 없다. 지금도 꾸준히 하는 건 그림 그리기와 산책 정도.
삶이 고단할 때면 그림을 그리고 뇌를 리프레쉬한다.
삶이 죽을 것 같으면 누워있는 게 대다수이다. 조금 살만해지면, 그림을 그리거나 산책을 한다.
그런데도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산책을 하는 게 : 돈을 버는 것, 미래를 위한 자격증 등의 공부에 비해 너무 멀어서 마음이 힘들 때가 많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싶다.
이 시간에 돈이 되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싶다가도.
죽을 것 같으니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한다.
유튜브와 소설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그림과 산책이 나으니까.
그럼 그림을 그리는 걸로, 돈을 벌면 해결이 될 문제인데, 막상 올리면 아무런 무반응이다.
그런데도 올린다. 부업보다는 감정기록의 의미다.
--------------------------
일에서 오는 기쁨
이렇게 지내면 되지 않냐고 물음이 온다. 현실적으로 힘든 것을 외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금전적으로 돈을 벌고 + 취미를 하고]
나도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걸 아는데,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면 좋겠고,
뿌듯했으면 좋겠다.
수동적인 있어도 없어도 되는 기계의 먼지 정도가 아니라.
다들 "취미가 직업이 되면 하기 싫어질 것이다."라고 한다.
이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는 달랐다.
"힘들고 불안한데, 재밌어."라고 했다.
무엇이 맞을지는 자신이 찾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몫을 책임질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슬프고 답답하지만, [병행]이다.
들어간 지 한 달도 안 된 이 사무직을 조금은 더 두고 볼 예정이고,
브런치와 그림인스타 등 시작했다. 우울증과 답이 없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 도달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하다. 얼마 안 되어 없어지는 것이라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
어떤 방향이든 마음을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단단히 나아가고 싶다.
방황하고 방향을 잃은 모두가
방향을 찾고 즐겁게 몰입하는 밸런스를 가진 삶이 되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