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왜 궁금하냐 '
“부장님, 전공이 뭐예요?”
“나? 나는 기계과지. 자네는 무슨 과야?”
“네, 저는 “
마른 가지였던 나무에서 파릇파릇한 초록이 보였다.
한쪽 팔에는 전공 서적을, 다른 쪽 팔에는 예쁜 가방을 들고 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서넛이 웃으면서 지나간다.
바람에도 겨울이 지나가는 냄새가 났다.
봄이 온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직장 동료 한 차장이 무심하게 나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내 마음이 들킬까 봐 재빨리 답을 하고 되물었다.
한 차장이 무슨 과를 전공했는지 들었지만, 그가 무슨 과를 전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차, 아침에 뉴스 봤어? 아파트값을 어떻게 잡냐”
나는 긴장을 했고, 오늘 아침 뉴스거리를 꺼내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빨리 다른 소재로 화제를 전환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한 차장은 아침 뉴스에 침을 튀면서 열을 내기 시작했다.
맛있게 먹은 점심인데 어쩐지 명치가 답답해 왔다.
“대학을 갈 거니? 취업을 할 거니?”
19살, 고3 졸업을 앞두고 담임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했다.
그때 우리나라는 IMF 시대였다.
전 국민이 집 안에 있던 아이들 돌 반지까지 나라에 기부를 하면서 나라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취업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집안의 장남이고, 빨리 군대를 다녀와서 안정된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은 직장 생활하다가 내가 등록금을 모아서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고 생각을 했다. 등록금이라는 부담감을 부모님께 드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번 돈으로 대학을 가면 그때가 가장 적당한 때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담임선생님께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마음 한편이 시큰한 게 이상했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해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 고개를 세차게 여러 번 흔들어 댔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내 뜻을 전달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군대부터 다녀오겠다고 지금은 가고 싶은 대학이 없으니 진학하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 군 제대 후 공부가 하고 싶으면 그때 내가 등록금을 모아서 가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부모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공부는 때가 있고, 지금 공부를 다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지금이 가장 적당할 때이니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부모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친한 동창 녀석들도 대부분 대학 진학을 한다고 했다. 부모님들의 계속되는 설득에 ‘대학 따위 나와서 뭐 하나’ 했던 내 마음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마음이 크게 혼란스러웠다.
부모님 뜻에 따라 대학을 입학했다. 그리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후 나는 바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그 뒤로 다시는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20살 대학을 입학은 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 했다.
그러니 한 차장과 대화에서 내가 말한 기계과 전공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학 생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어쩐지 늘 외면하고 싶었다. 불편했다.
‘대학 나왔다고 잘난척하기는. 쳇!‘
군 제대 후 이력서에 대학교 휴학 중이라고 적으니 취업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원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신입 직원이 되고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직감을 했다.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겠구나!!!
사회 초년생 시절은 치열했다. 냉정하게 평가되면서 일을 배웠다. 일을 배운다는 표현보다는 눈치껏 알아서 해야 했다. 사회는 친절하게 일을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12시 정도 퇴근했다. 거의 매일 퇴근 후 소주 한 병에 위로받는 날들이 연속이었다.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시간이 흘러 직장 생활 5년 차, 이제는 일도 손에 익었고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였다. 후배들도 나를 잘 따르고 직장 상사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역시 박 대리야. 믿고 맡기면 다 해결이 되니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정말!!!”
직장 생활이 즐거웠다.
대학은 잊고 지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생각이 드니 오히려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뛰어난 사람임이 증명되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이 뿌듯했다. 내 삶이 만족스러웠다.
온통 일을 통해서만 기쁨을 얻었다. 떠밀려오는 일들을 처리해 나가면서 지치기보다는 오히려 희열을 느꼈다.
나는 일을 하고자 태어난 사람처럼 종일 회사 일에 달려들어 해결해 나갔다. 누가 보면 마치 우리 부모님 회사인 것처럼 일을 했다.
햇살이 따뜻한 오후.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 출입증을 목에 찬 채로 회사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커피 한 잔 마시자”
들어간 커피숍에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두꺼운 전공 책을 들고 있는 두 남학생의 대화가 들렸다. 풋풋한 모습도 그렇고 전공 시험에 대해 말하는 걸 보니 주변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것 같았다.
이번 학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냥 학교 휴학을 하고 취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등록금이 비싸서 부담된다는 내용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등록금이 너무 비싸 휴학이나 할까 봐. 대학을 왜 다니나 몰라.”
그날 내 앞에 줄 서 있던 두 남학생의 대화가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문뜩문뜩 떠올랐다.
‘지금도 등록금이 비싸구나. 휴학을 하면 학교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텐데. 학교 다닐 때 계속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학생 '
혼잣말을 한다. 알지도 못하는 그 남학생을 붙잡고 시원하게 조언을 못 해준 게 계속 생각이 났다.
알고 있다. 이건 오지랖이다.
‘다시 공부하고 싶다.’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무슨 이유인지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더는 진짜 공부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학교 홈페이지를 참고했다.
이제라도 내가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막아서는 장애물이 있다면 다 물리치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
다시 시작하면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났다.
나는 더 이상 대학이라는 단어에 기죽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이야기가 나오면 스스로 위축이 되는 것이 싫었다.
아내와 의논을 했다.
가족들에게도 말을 해야 했다.
혹시라도 지금 무슨 대학을 가냐는 소리를 듣게 될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몇 번이고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아내에게 말을 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20대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겁이 나려 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나는 늘 겁이 커져서 결국 아무것도 결정을 못 내리곤 한다.
다행히도 모든 가족이 나를 지지한다. 부담감이 있다. 4년 동안 완벽하게 좋은 학점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나 자신과 다짐을 한다. 그래서 과제를 할 때도 시험을 볼 때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고 있다. 열심히 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요즘 입사를 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확실히 빠르다. 배우지 않고 있으면 나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저 멀리 뒤로 밀려나 있는 듯한 걸 느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나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급변화되는 시대에 올라타고 싶다.
마흔이 넘어 직장생활과 대학공부를 동시에 진행하는 요즘.
가능하면 일찍 퇴근하고 일찍 잠을 잔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전공 공부를 하고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한다. 그리고 출근을 한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정해둔 일정대로 진행하려고 한다.
‘과연 내가 4년 후 졸업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정말 졸업을 하겠다. ‘
날마다 나를 의심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마무리하겠다는 목적성을 가지고 매일 아침 다짐한다.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대학을 선택한 이들은 대학 공부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들을 어떻게든 풀어보고자 노력한다. 늦게 시작한 만큼 잘하고 싶다. 나 자신과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의지를 가지고 졸업까지 하고 싶다.
“뽐내고 싶다!”
수업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마음이 괜스레 두근두근하는 것이 여기저기 말하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뽐내고 싶었다.
시대가 좋아지고 이제는 선택하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이면서 장남인 나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공부를 한다는 것은 팔자 편한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업무가 많은데 학교에 하루 이틀이라도 나가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면 그게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 망설이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나이가, 직장이 걱정인 사람들. 과정 전부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망설임을 백번 삼켜버리고 단순한 시도를 해보길 권한다.
나는 뽐내고 싶다.
스무 살, 과거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늘 불안했다.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이제는 그 반대이다.
공부를 하고 싶다. 대학공부, 전공 공부를 하고 싶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업무에서 기쁨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는 학교 수업과 과제를 통해 삶의 실질적인 기쁨을 느끼고 있다. 소모적인 삶이 채워져 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이러한 과정들이 보람차게 느껴진다.
이런 내가 이상하다.
사회 전반에 대한 얕은 지식에서 벗어나 전공에 대한 깊은 지식을 알고 싶다.
비록, 이제 겨우 1학년 1학기를 공부 중이기는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점차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채워지고 있다. 교과서적인 표현이지만 배움을 통한 기쁨이 생겼다.
고상한 단어는 모르겠다. 그냥 배워가는 것이 즐겁다. 어렵고 포기하고 싶은 과목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즐겁다.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채널이 넓고 깊어졌다.
단순하게 보던 것을 분석하면서 보게 되는 것 또한 쾌감이 느껴진다.
공부가 나에게 활력을 주는 존재가 된 것이 어이가 없게 여겨진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즐겁다.
삶에 다른 즐거움이 시작된다.
늦게라도 대학 공부를 시작했으니 전공을 살려서 대학원도 진학할 수 있었으면 한다. 꾸준하게 공부를 하고 싶다.
“커피 한 잔 마시자”
들어간 커피숍에 손님들이 여전히 많다. 뒷줄에 선 대학생들이 기말고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묘하게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 나도 주말에 기말고사인데... 훗!‘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커피숍을 나온다. 별로 웃기지 않은 동료 이야기에도 큰 웃음이 나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마른 가지를 가졌던 나무가 커다란 나무 그늘을 가지고 있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이런 날에는 참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