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태엽 Nov 01. 2024

아픈 몸 수선하기 018

9월 20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연휴 내내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쉬질 못했다. 내내 몸이 좋지 않았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유를 몰라서 되는대로 온찜질도 하고 심호흡하며 양 세듯 숫자도 세며 잠을 청했지만 새벽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한다는 듯 잠으로 도망칠 수 없었다. 숫자를 세도 의식은 선명하기만 했다.


피부는 가뭄이 온 것처럼 미세하게 갈라져 그 틈으로 진물이 스멀스멀 샜는데 아예 터지는 것도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팔이 시리고 따가워서 속까지 울렁거렸다. 팔의 고통과 가려움을 참다 보면 다른 부위들까지 산발적으로 소위 지랄을 시작하는데 울다가 밀려오는 어스름을 보면 그렇게 무력할 수가 없다.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대체 내가 뭘 더 할 수 있는 건데….


귓불을 절구로 꾹꾹 빻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다 너무 피로한 몸이 셔터를 내리듯이 기절하듯 잠이 든다. 이렇게 드는 잠은 전혀 달지 않다. 쓰기만 하다. 잠든 상태로도 끙끙 앓다가, 잠에서 깨면 자면서 반감되었던 고통(잘 때 아예 고통이 없지 않다)이 자 그럼 이제 빚 갚아야지 하면서 또 나를 물어뜯는다.


진료를 보면서 엉엉 울었다. 위가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했는데 밀가루도 고기도 먹은 게 없어서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일단 또 배란기가 다가와서(난 한의원 다닌 이후에 여자 몸은 정말 멀쩡할 날이 없구나를 깨달았다. 지났다 싶으면 또 배란기다.) 몸에 열이 찬 게 문제고, 뭘 잘못 먹어서 소화력이 아주 떨어졌다고 하셨다. 계속 한의사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문득 며칠 전에 쌀빵을 조금 먹은 게 떠올라서 그걸 말씀드렸더니 그게 문제라고 했다. 글루텐 프리, 비건 빵, 쌀빵 다 안된다고 하셨다. 예전에 조금 먹었을 때 멀쩡해서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사고를 치네,라고 하신 건 내 탓을 할 마음이 있으셨던 건 아닌 걸 안다. 근데 나는 심신이 너무 지쳐있어서 잘 되고 있던 치료를 내가 다 망친 것 같았다. 여태 잘하다가 그냥 상을 엎어버린 것 같아서 너무 비참했다. 그리고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다.

빵 하나 먹은 거 가지고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해?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내가 뭐 소화가 어려운 치킨을 먹기라도 했어 술을 처먹었어 뭘 했어 한 주먹도 안 되는 빵 먹은 것 가지고 며칠 내내 잠도 못 자고 식욕도 없어져서 뭘 먹지도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다른 사람들 하하 호호 웃고 행복하게 일상 보내는데 아니 무난하게라도 일상 보내는데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해

이렇게 화내다가도 힘이 탁 빠진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다는 착각에 허우적거리다가 또 부끄러워진다.


타자 치는 와중에도 귀가 너무 아프다…. 내 눈에 안 보이는 뭔가가 달라붙어서 귓바퀴를 콱콱 씹고 있는 거 아닐까?

나아질 수 있다고, 응원한다고 간호사분이 말씀해 주셨다. 너무 감사하고 감사하다. 근데 난 그 미래까지 내가 밟고 가야 할 내일이 너무 무섭다.


당장 오늘 밤은 또 어떻게 버티지. 어제 너무 고통스러워서 새벽에 엉엉 울었다. 나와 달리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깨워서 내 손 좀 잡아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게 너무 외롭고 세상에서 유리된 것 같았다. 혼자 이겨낼 수밖에 없다니…. 물에 얼굴을 담근 것도 아닌데 벌써 숨이 찬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몸 수선하기 0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