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약을 끊은 지 하루 만에 귀에서 다시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손등 또한 따갑고 스멀스멀 진물이 배어 나왔다. 얼굴이 터졌다. 한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는 예상범위였던지 침을 놓으며 이건 견뎌야 한다고 했다. 그만 견디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역류하는데, 진짜로 신물이 오르는 건지 목구멍이 따가웠다. 예상대로 심리적으로 소모가 너무 크다. 산뜻했던 상태에서 벗어나니 절벽에서 떨어지듯 추락한다. 이렇게 빨리 나빠질 일인가. 약을 끊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가라앉는 배에서 내릴 수도 없이 차오르는 물을 보는 것 같다. 수면이 호흡기까지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숨 참을 준비밖에 없다.
눈이 부어서 또 30% 정도 감은 상태로 지내는 중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내 미래도 잘 보이지 않는 건지 불안함이 증폭된다. 몸의 신호를 뇌가 과민하게 해석해 불안함이 커지는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 본다. 스테로이드를 먹기 전, 지난주처럼 돌아갈까 봐 미쳐버릴 것 같다. 그렇게까진 안 될 거라는데 믿을 수가 없다. 이미 살만한 몸 상태를 체험해서 그렇게 나빠지지 않더라도 내 머리는 그것보다 최악으로 느낄 게 분명하다. 삶이 물에 녹은 휴지 같다. 훼손은 너무나 쉽고 복구는 불가능한….
저녁에 온찜질을 하다가 잠들었는데 더워서 여기저기 가려워 벅벅 긁었다. 이런 가려움은 1주일 만에 겪는 것이라 특별히 괴로웠다. 스테로이드를 오래 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지고 결국 예전처럼 돌아갈 걸 아는데도 약을 먹고 싶었다. 어디서 약물중독자들이 약물에 중독되는 건 어떤 기점으로부터 쾌감 때문이 아니라 약을 복용하지 않을 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경우지만 어떤 메커니즘인지 살짝 알 것 같다. 사실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싶은 것과 똑같은데 왜 중독되는 기분일까…. 완전히 의존하게 될 것 같아서 그런가.
그러나 몇 개월간 기댈 곳 없이 정면으로 고통을 들이받아서인지 나는 뭐든 기댈 곳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다른 사람은 시련이 오면 몇 개는 비켜가곤 하는데 왜 나만 모든 허들에 발이 걸리는지 모를 일이다.
늘 그렇듯 나의 원망은 허공으로 방사되고 공기 중에 독처럼 녹아서 나의 호흡기로 들어온다.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피우듯 내 불쾌한 울분을 마시고 독한 연기를 괴로워하듯 기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