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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태엽 Nov 23. 2024

아픈 몸 수선하기 033

11월 21일

한의원을 다녀왔다. 밤 내내 팔이 몹시 가려워서 많이 앓았다. 팔을 감싸 안고 이를 갈다가 겨우 잠든 것 같다. 한의원에 가니 예상대로 다시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뭔가 잘못 먹은 건 아니었다. 다시 생리할 때가 와서 에너지가 아랫배 쪽으로 쑥 빠지고, 그 아랫배가 긴장해서 그렇다고 했다.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애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 놀라진 않았다. 그저 착잡했다. 몸을 콱콱 찌르는 약침이 아파서 눈물이 나는 건지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나는 건지….


갈수록 머리를 굴리는 게 귀찮아진다. 컨디션은 저조하고 기분은 더러운데 뭐 어떻게 이 기분에서 탈출해야 하는지 궁리하는 것조차 지친다.

느릿느릿하게 좋아진다는 건 안다. 그런 긍정적인 변화는 크게 체감이 안되는데, 부정적인 변화만큼은 너무나 선명하다. 삶의 모든 게 흐려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고통만이 뚜렷하다니.


나와 내 몸이 전쟁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다 싶지만, 굳이 전쟁에 비유해 본다.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이 지난한 시간을 버티고 있지만, 기약 없는 종전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가 없으니 나에겐 하루하루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다. 그것도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저 부상만 다채롭다.

몸이 조금 나아지고 많이 나빠지길 반복하는 것도 최전방에서 고지를 차지했다가 빼앗기길 반복하는 것과 비슷할 테다.

고작 죽는 병도 아닌 피부병을 목숨을 건 전투에 비유하는 게 누군가에겐 우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죽는다면 날 죽이는 건 아마 병마에 미쳐버린 내 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목숨을 건 투병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언젠가 이게 다 끝날 일임을 안다. 내가 바라고 바라는 그때가 되면 지금 겪은 이 시간은 어떠한 성장기라고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일 끝날 일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남는다 해도 기쁘지 않다. 내일도 살아남아야 하고, 모레도 살아남아야 하고 아마도 여전히 고통스러울 다음 달도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는 것이 오히려 두렵다.


새벽은 길고 나의 잠은 짧으니 어둠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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