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2016)

꿈과 꿈과 꿈의 연속. 그 꿈이 모여 만들어낸 낭만적인 현실.

by 지태엽

<라라랜드>는 16년도 말에 개봉한 영화다. 어느 겨울밤, 틈만 나면 극장에 가 영화를 보던 그 시절의 나는 자연스럽게 <라라랜드>를 보게 됐다. 딱히 어떤 영화인지 찾아보고 간 건 아니었다.

<라라랜드>는 노래와 함께 시작한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 '꿈'이므로, 꽉 막힌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화내는 게 아니라 노래하고 춤을 춰도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노래하는 게 즐거워서,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겠다는 듯 카메라도 속도감 있게 움직였다.

그해 12월의 나는 우울했다. 불이 꺼져 새카만 극장, 유일하게 빛나는 스크린 속 맑은 날의 배우들이 유난히 행복해 보였다. 누구도 억지로 춤추고 노래하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 앉아 밝은 곳을 바라보는 나는 철저히 영화와 유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그들의 로맨스를 궁금해한다. 미아와의 만남 후, 바다와 석양을 배경에 두고 느긋한 선율을 입에 올리던 세바스찬은 카메라 쪽으로 걸어온다. 멀리서 잡았던 앵글이 얼굴로 가까워지며 그의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언뜻 드러낸다. 관객 쪽으로 다가오는 걸음걸이, 그와 나는 여전히 한 장의 스크린을 두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 발짝 가까워진 듯한 착각이 든다. 영화와 유리되어 있던 나는 세바스찬이 홀로 부르는 'city of stars'를 들으며, 그들의 로맨스를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된다.

이 관계의 '꿈'의 속성을 강조하듯 모든 것이 모호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 탭댄스를 추는 두 사람

미아와 셉은 서로의 첫인상이 최악이다. 로맨스 영화의 법칙 중 하나, 비호감으로 시작할 것. 법칙 둘, 그런 비호감을 계속 마주칠 것.

우연일까, 운명일까. 아마도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적 만남이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다. 관객은 이 점을 간과한다.


'라라랜드'는 '환상의 세계, 꿈의 나라'를 뜻하는 말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한다'는 완결을 맞이하지 않는다는 걸 일찍부터 알려주었다.

먼저, 서로에게 반할 일이 없다는 노래를 부르며, 누구보다 서로에게 반한 사람처럼 해 질 녘 파랑과 분홍이 섞인 하늘을 바탕으로 탭댄스를 추는 두 사람. 해 질 녘은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개와 늑대를 식별할 수 없는 모호한 시간대다. 각각 꿈과 현실을 뜻한다고 본다면 해 질 녘은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임을 뜻한다. 둘은 꿈같은 배경에서 꿈처럼 노래하며 춤을 춘다.

무산될 뻔한 첫 데이트는 리알토 극장에서 이루어진다. 손을 잡고 영화를 보는 그때, 영화의 필름은 녹아버리고 상영이 중단된다. 첫 데이트에 일어난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볼 수 있지만, 두 사람의 결말을 생각하면 그런 용도로만 쓰인 장면을 아닐 것이다. 미아의 직업은 스크린에 등장할 배우이기도 하니까. 두 사람의 로맨스는 해피로 완결되지 못하는, 미완성의 로맨스가 될 복선이다. 후반부의 이 리알토 극장의 폐업은 둘의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연인이 함께하는 엔딩을 맞지 못할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제목이 '꿈의 나라'인 만큼 강렬한 '꿈'시퀀스로 엔딩을 장식하는 라라랜드

그다음, 그리니치 천문대로 간다. 설레는 마음으로 천문대를 누비다, 천체투영실로 들어가 영사기를 켜 별을 본다. 환상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은하수를 배경으로 왈츠를 춘다. 여기서 췄던 왈츠는 마지막 기나긴 세바스찬의 꿈 시퀀스에서 별처럼 빛나는 전구를 배경으로 두고 그대로 나온다. 천문대의 영사기가 보여주는 별은 진짜 별이 아니라 가짜, 꿈 시퀀스에서 나오는 배경도 진짜가 아니라 가짜 별이다.

꿈 시퀀스는 세바스찬의 연주와 함께 시작된다. 그에게만 비치는 강렬한 조명을 통해 관객은 세바스찬의 꿈에 들어간다. 아쉬웠던 과거를 죄다 행복하게 바꿔버린 장면이 휙휙 지나간다. 입체적이었던 배경은 미아가 오디션에 합격한 뒤 납작하게 바뀐다. 그곳은 세바스찬이 가지 못해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드에 출력한 듯 납작한 배경과 도로와 신호등, 좁은 강 모두 가짜로 바뀐다. 클라이맥스에 접어들며 앞서 말했던 왈츠를 추는데, 그 배경도 별천지로 꾸며놓은 것이지 진짜 별은 아니다.


하지만 가짜 별이라는 의미만 가져가는 건 아쉽다. 별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두 사람은 둘 다 별이 될 인물이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별에 종속된 행성이 되기보다는 둘 다 빛나는 별이 되길 선택한 연인은 세월이 흘러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미래를 맞게 되었다.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해서 서로를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각 한 번씩 꿈을 포기한다. 셉은 미아의 부모님이 셉을 탐탁지 않아 하자, 내키지 않던 밴드로 들어가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들이게 된다. 이젠 이것을 꿈으로 삼겠다고 하지만, 미아는 그에게 그건 너의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인극을 망쳐버린 미아는 뒤늦게 극장으로 찾아온 셉을 두고 본가로 가버린다. 그러나 연결이 되지 않는 미아 대신 세바스찬에게 미아의 1인 극을 본 사람이 오디션을 제안한다. 곧바로 미아의 본가를 찾아간 세바스찬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미아에게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고 말하며 다음날 오디션에 데려다줄 테니 나오라고 한다.

자신의 꿈에 빠진 두 사람은 현실을 맞닥뜨리자 무너진다. 그렇지만 원래 서로의 꿈 외부에 존재하던 연인이 무너진 이에게 너의 꿈을 거듭 강조한다. 꿈 바깥에 있어서 서로의 꿈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안다. 연인이 얼마나 그 꿈에 지독하게 매달려왔는지도.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됐을 때 자신보다 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가 두 사람의 꿈을 지켰다.

미아는 성공적으로 오디션을 본다. 프랑스로 가게 될 미아와 이곳에 남을 셉은 이제 두 사람이 꿈꾸던 '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는 것처럼, 더 이상 노을이 아니라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낮에 대화를 나눈다.


우린 어디쯤 있는 거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 보자.
언제나 자길 사랑할 거야.
나도 항상 사랑할 거야.


인간은 참 이상한 생물이라서, 곁에 머물지 않는 사람은 물론 얼굴 한번 직접 마주한 적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셉과 미아는 그곳에서 이별하지만,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을 지켜왔기 때문에 세바스찬의 재즈 바에서 재회했을 때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가슴을 쥐어뜯게 되는 것이다. 눈빛으로 증명했으니 관객은 확신하게 된다. 이 이후로도 둘은 서로를 멀리서 응원할 것이다.


난 위기가 좋아
인생의 펀치를 맞아주는 거야
난 불사조처럼 다시 날 거야

불사조처럼 다시 날겠다던 세바스찬은 자신의 꿈을 버리는 한차례의 죽음을 맞이했다가 미아 덕분에 다시 재즈를 향한 꿈을 되살리고 바 '셉스'를 성공적으로 차리게 된다. 초반에 세바스찬이 말했던 "난 불사조처럼 다시 날 거야"이 말은 엔딩에서 지켜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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