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나의 짧은 삶에서 별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언제부터 별을 사랑했는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다만 나의 짧은 삶에서 별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본다고 했다. 그 짧은 말이 머릿속에 콕 박혀서 어린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행복하지 않아도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봤다. 날씨가 좋고 나쁨과는 관계없이 하늘을 보면 마음이 조금 시원해졌다. 그러다 희끗한 별과 눈이 마주치면 반가웠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별의 빛일지도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도시에 살았다. 대기오염과 빛공해로 인해 겉보기 등급이 높다는 별도 잘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맑은 날이면 꼭 희미한 별을 짚어가며 별자리를 찾아보았다.
명성과 달리 밝지 않은 북극성은 찾기 어려워 불이 다 꺼진 산 중턱의 학교를 마지막으로 나설 때 가끔 발견했다. 겨울이면 하늘에 늘 오리온자리가 있었고, 별 세 개로 이루어진 허리띠를 짚어주며 저것의 이름은 삼태성이라고 괜히 친구들에게 이름을 알려주곤 했다.
고등학교 과학실 구석의 낡은 천체망원경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나였다. 저녁 하늘에 떠오른 달에 초점을 맞춰 놓으면 우리의 예상보다 움직임이 빠른 달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훌쩍 렌즈를 벗어났다. 천체 자동추적 기능은 당연히 없는 망원경이었으므로, 달을 오래 보기 위해서는 수동으로 움직여야 했는데 다시 렌즈에 눈을 갖다 대고 달을 찾는 일이 나는 하나도 번거롭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오래된 꿈이고, 내가 포기한 꿈이고, 여전히 문득문득 떠오르는 꿈이다.
<인터스텔라>는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진다. 처음 봤을 때는 장엄한 우주의 모습에 매료되어서 눈앞에 보이는 우주의 모습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가르강튀아, 블랙홀의 강한 중력 탓에 밀러 행성의 1시간은 지구의 7년과 같다고 했다. 과학시간 겉핥기로만 배운 상대성이론의 결과가 인듀어런스호로 돌아갔을 때 한 톨 늙지 않은 쿠퍼나 아멜리아와 달리 나이 든 로밀리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블랙홀이 잡아당겨 길쭉하게 늘어난 행성, 지구에서 달 때문에 파도가 치듯이, 그보다 더 커다란 중력으로 인해 산처럼 높게 치솟은 파도가 감독의 상상에서 현실처럼 스크린으로 옮겨갔다는 게 지금 봐도 경이롭다.
2차원의 원이 동그라미라면 3차원의 원은 구라서 웜홀의 모양이 구라는 건 영화를 두 번은 보고서야 이해한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 설명을 들으면서도 그저 흥미롭고 우주가 궁금했다. 소위 말해 '간지'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가 과학을 빌어 말하고자 했던 '사랑'이야기는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봤을 때 깨달았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사랑은 계란 속 알맹이고 과학은 계란 껍데기이다. 나는 처음엔 껍질을 봤고 그다음에 속을 본 것이다.
스크린 속 인듀어런스호가 우주를 횡단할 때, 카메라는 일부러 인듀어런스호를 아주 멀리서 잡는다. 얼마나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지, 인듀어런스호 속의 주인공에게 이입한 관객들은 화면의 크기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그 장면에서 압도된다.
그리고 그 작은 인듀어런스호 속의 더 작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운 사랑이 한 종의 미래를 바꾸게 된다.
'머피의 법칙', 뭐든 일어날 수 있죠.
NASA에 소속된 과학자와 탐험가는 '머피의 법칙'을 뭐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본다. 과학자도 탐험가도 아닌 농부, 머피의 오빠 톰은 그 이름을 징크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아주 희박한 가능성만을 안고 우주로 나아가 새로운 땅을 찾는 사람과 있는 땅을 꾸리기 바쁜, 변화가 두려운 인물의 사고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늘 낮은 가능성에서 무수한 실패를 반복하던 이들이다. 그래서 머피의 이름부터가 복선이었다. 머피의 법칙,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부정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사실 영화 시작부터 머피가 겪는 '책장 뒤의 유령'사건은 이미 쿠퍼에게 일어난 일, 일어남이 확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사랑으로 연결된 머피가 양자 데이터를 쿠퍼로부터 전해받게 되는 것도 일어남이 확정된 일이기도 하다. 머피의 탄생이 쿠퍼에게 필연적으로 행복한 일이었듯이, 쿠퍼의 사랑이 담긴 이 사건은 머피에게 필연적으로 행복으로 가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누구도 모르는 상위 차원의 존재만이 아는 일이라 인물도 관객도 모두 영화의 막바지에 들어서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발명한 게 아니지만 관찰이 가능하고 강력하죠.
뭔가 의미가 있을 거예요.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는 못 하지만 믿어보기는 하자고요.
밀러 행성에서 예상치 못한 파도를 만나 20년이 넘는 시간을 잃어버린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황. 좋은 신호를 보내는 두 행성 중에 어디를 방문해야 하는가. 만 박사의 행성으로 갈지, 에드먼즈의 행성으로 갈지 토론하는 그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의미를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멜리아다.
중력과 사랑만이 시공간을 관통할 수 있다고 했던 아멜리아의 대사는 초입방체, 테서랙트에 들어간 쿠퍼가 수많은 머피의 방에 둘러싸여 책장 뒤의 끈을 튕겨 시계 속에 양자 데이터를 새길 때가 되어서야 관객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력과 함께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게 사랑이다. 다시 한번 계란을 가져오자. 중력이 계란 껍데기이라면, 그 안에 든 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계란은 껍질과 속이 모두 존재해야만 계란이라고 부른다.
미래의 자신의 신호를 따라 우주로 날아오른 쿠퍼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우주 미아가 되었을 때, 의식 없이 둥둥 떠다니는 쿠퍼의 뒤로 빛나는 태양은 마치 쿠퍼를 따스한 빛으로 감싼 것처럼 보인다. 실루엣을 두른 태양빛은 얼핏 보면 성화에서 인물을 감싸는 금빛 헤일로 같다. 아무도 양자 데이터를 보낸 사람이 쿠퍼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과 합체해 아마도 쿠퍼가 머피만의 영웅임을 뜻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STAY"만을 애타게 외치던 부녀는 기적적으로 재회한다. 딸은 아버지에게 더 이상 "STAY"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자식의 죽음을 볼 필요가 없다는 머피의 말과 함께 퇴장하는 쿠퍼의 모습, 머피에게서 멀어지는 카메라는 쿠퍼와 동일한 시점인 관객이 머피에게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며 두 사람 사이에 오가던 "STAY"가 완결되었음을 알린다.
그들을 우주로 갈 수 있게 만든 게 과학이라면, 우주에 가야 하는 이유를 심어준 것은 사랑이다. 한국에 사는 나는 문이과를 딱 잘라 어떤 쪽이 더 돈을 벌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따지던 사회가 얼마나 멍청한지 짚어주는 것 같았다. 과학과 문학, 사랑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뭐든 시작되는 건 인간의 마음으로부터였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