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2025)

살고 싶어서 죽기로 한 남자

by 지태엽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야 미키의 입에서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유일한 친구의 배신은 일상에 연구원들은 미키를 인간이 아니라 당연한 소모품으로 여긴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다는 건 역설적으로 절대로 완전히 죽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보는 사람마다 미키에게 "죽는 게 어떤 기분이야?"라고 묻지만, 사실 미키는 완전히 죽어본 적이 없다. 대답을 늘 회피하던 미키는 그 완전하지 않은 죽음조차도 두렵고 또 두렵다고, 조심스레 묻는 카이에게 솔직히 털어놓는다. 나샤 외에는 누구도 그를 인간 취급해 주지 않지만, 소모품이 되기 전과 같이 먹고 마시고 자고 사랑하는 미키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실험이라는 이름의 고문으로 20번에 가까운 (준) 죽음을 겪으며 차라리 '완전히'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미키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은 소심한 성향으로 인한 회피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용기라고 부르고 싶다. 어쩌면 그런 모진 삶에 기어코 붙어있는 것도 용기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수많은 죽음에다 내팽개친 게 아니라 '진짜' 죽음에서 멀어지기 위한, 삶을 향한 사랑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방식이라기엔 심히 과격하긴 하다만 무슨 밭에 굴러도 이승이라고 하지 않는가)

만약 내가 미키였다면 그냥 죽이라고 하거나, 스스로 뇌가 백업된 벽돌을 찾아 파괴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키는 과거 트라우마, 자책감에 깊이 시달리며 수차례 이것은 형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결코 살아가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삶을 사랑하는 단단한 사람이다.


그래, 미키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어릴 적 조수석에 앉아 무심코 눌렀던 빨간 버튼, 동시에 일어난 사고. 엄마를 잃은 그때 미키의 머릿속엔 자신이 그 버튼을 눌러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각인된다.

그러나 후반의 미키 중에 독보적인 또라이, 미키 18은 또다시 이 상황이 자신의 죄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말하는 심약한 미키 17에게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라고 한다. 사고는 미키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고 미키는 미키를 변호한다. 두 사람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변호한 것이다.

미키들은 모두 같은 기억의 뿌리에서 탄생한 존재다. '내가'라고 말하는 건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지만 내겐 특별하게 다가왔다. 미키 17과 18의 존재가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고, 한 기억을 가지고 때에 따라 그 순간에 대한 판단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앞서 어떤 미키는 우유부단하고 또 다른 미키는 답답한 미키였다는 나샤의 말을 미키가 전한 적이 있다. 미키는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현실에 순응하기도 하고, 답답하게 말도 못 하고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지만 미키 18처럼 부당한 현실에 분노할 줄 알고 복수를 감행할 정도로 행동할 줄 알기도 한다. 거짓말이라곤 못하는 미키 17에 비해 능청스레 구라를 치고 못된 친구의 뒤통수를 때린다. 이건 미키 18만의 특성이 아니라, 본체 미키 안에 내재되어 있던 속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말에 도달한 미키 17, 아니, 그냥 미키는 악몽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미키 18처럼 말한다. 그 모습 또한 미키의 일부분이니까. 눈을 떴을 때, 다시금 눈앞에 놓인 빨간 버튼은 이제 자동차가 아니라 미키를 수차례 복제했던 프린트기를 파괴하는 것이다. 미키는 그것을 누름으로써 자신의 원죄처럼 여겼던 빨간 버튼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그의 얼굴의 미소는 마침내 눈보라의 계절에서 봄으로 도달해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영화 내내 봤던 미키의 표정 중 가장 후련해 보인다.


그 외에도 할 이야기가 정말 많은 영화였다. 너같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여성이야말로 이 새로운 터전에서 자연번식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령관에게 "제가 자궁으로 보이시나요?"라고 말하던 카이의 모습이나, 후반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사령관 부부 앞에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드는 커다란 목소리로 그들을 일갈하는 나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멍청한 사령관 백인 부부 앞에서 외계인은 우리가 외계인이고 원주민은 크리퍼 그들이라고 소리치는 나샤의 구도, 그리고 그 영화를 찍은 감독은 아시안이라는 영화 외적 요소들까지 합쳐지며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멋진 모습은 모두 나샤가, 찌질한 모습은 모두 미키가 했다. 혁명과 성장을 모두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본 영화는 쿠키영상이 없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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