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길 포기했던 피부질환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 6월 27일
한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야 글을 쓰지만 다니기 시작한 건 3월 30일인가… 그때부터니까 3개월이 다 됐다. 6월 27일이라니….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다.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유는 아토피 피부염과 건선 때문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손발에 유독 심해서 몇 개월간 대학병원을 다녔는데, 그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포기한 채로 살다가, 아버지가 한의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유명한 한의원이라 예약 후 잊고 지내다가 1년이 지나서야 진맥을 받을 수 있었다.
맥을 짚는 첫날 의사는 내 신경줄은 바짝 서있는데 그 외의 주요 장기의 활동이 매우 더디다고 했다. 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죽은 장기 건강의 회복이 먼저라고 했다. 장기가 건강해지면 피부는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라는 말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 뭐라고 많이 말했는데 솔직히 난 '음, 대충 주화입마 직전이라는 뜻이군.'하고 요약 이해했다.
치료 시작하면 고생할 거고, 그렇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치료 시작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묻겠다. 치료하겠는가? 뭐 이런 질문을 들었다. 나의 의지가 중요하니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 어차피 나야 이제 갈 곳이 없으니 그러겠다고 했다. 근데...
진짜로 이렇게 개고생 할 줄은 몰랐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초반에는 정신과 약을 끊었다. 몇 년간 달고 살던 수면제가 없으니 2주 정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정신과 약 성분이 빠져나가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건지 3주 차쯤 됐을 땐 잘 잤다곤 못하지만 자기는 잤다.
그리고 식단 관리를 시작했다. 육류와 밀가루, 가공식품은 일체 금지되었다. 당류도 거의 먹으면 안 된다. 좋아하던 치킨이나 빵은 치료가 끝날 때까지 입은 무슨 손도 대면 안 된다. 식사에 꼭 고기반찬이 있었는데 이제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되었다.
1주일에 1회 한의원에 방문해서 맥을 짚고 침을 맞는 과정을 거쳤다. 정신과 약을 끊으면서 고생이 1차 지나갔기에 조금씩 나아지진 않을까 생각하면서 병원을 다녔다. 그런데 잊고 있던 의사의 고생할 거라는 말이 던져놓고 잊은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인생은 미지수에 내가 대입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잊고 살았다.
얼굴 피부가 짓무르기 시작하더니, 긁지도 않았는데 터져서는 진물이 나고 얼굴은 진물 딱지로 뒤덮었다. 이따위로 살아야 하나 싶긴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러다가 2주 전 토요일에 사달이 났다.
하도 고생하니 혈육이 호캉스를 하사하셨다.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으니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처박혀서 힐링했다.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안 떠졌다. 얼굴이 다 터졌고, 말이 잘 안 나오게 입술을 움직이면 싸한 느낌과 함께 진물이 났다. 입 벌리면 쫙 찢어지는 느낌이 섬뜩해서 얼굴 근육을 움직이기가 너무 두려웠다.
최악이었다고 생각했던 게 바닥은 아니었던 것이다. 위로 올라가는 건 1cm도 그렇게나 힘겨운데 추락은 너무도 쉽고 더 낮은 곳으로 가는 건 그보다 더 쉬웠다.
거울을 보면 토할 것 같았다. 흉측해서. 그저 흉측해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외적인 아름다움도 문제였지만 이런 흉측한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다방면으로 공포가 밀려들어왔다.
아침 일정은 물론 오후 일정까지 모두 취소하고 급하게 한의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그대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기껏 날 위해서 혈육이 준비했던 걸 모두 망친 기분과 급격하게 악화된 건강까지 바닥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입까지 막아버리나 싶어서 누군가를 죽어라 원망하고 싶은데 내 원망은 향할 데가 없었다. 갈 데 잃은 원망은 다시 내게 돌아와서 내가 배로 괴로워졌다.
한의원에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몸의 체질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반응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날 전체가 지나치게 괴로웠으니 머리가 자동으로 지운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주에 한 번 가던 병원을 근 2주간 3번씩 가고 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또 어제까지는 느리게 나아지다가 새벽에 상태가 안 좋던 귓바퀴와 귓불이 터져서 진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얼굴도 조금 부어올랐다. 아침에 그 섬뜩한 느낌과 함께 눈을 떴는데 너무 무서웠다. 진물이 마르는 섬뜩한 느낌, 신경줄을 바짝 갉아먹는 가려움증 가운데서 나는 무력하기만 하다.
또 2주 전처럼 얼굴이 망가질까 봐. 그럼 또 그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건데, 도무지 용기가 안 났다.
의사는 맥이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피부에 기복이 있더라도 시간 싸움이라 꼭 나을 거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또 얼굴이 망가졌을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견디면 낫는다는 뜻은 견뎌야 한다는 것이지 않나.
그 시간이 길고 짧을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견뎌야 한다니 미칠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다 필요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너무 피곤했다. 겨우 추스르고 오늘도 한의원을 다녀왔다.
의사는 나에게 식단 조절도 잘하고 있다고 했다. 다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근데 왜 안 나을까…. 모르겠다. 자꾸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이런 생각만 들었다. 뭘 더 해야 할까. 문뜩 어제 모 선생님이 나에게 너는 나을 의지가 없는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내가 그런가 싶었다. 난 의지가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가. 그렇지만 나름대로 한의원을 꾸준히 가고, 약을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고, 식단 조절을 하고 이 좆같은 고통을 견디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데….
의사가 여기서 더 잘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자기를 조금 더 믿고 따라 달라고 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습관적 회피자인 나는 그 말이 반갑다.
침 맞고 나와서 신장 기능검사를 하러 보건소에 들렀다. 피를 뽑고 나오는데 그저 피곤했다. 숨만 쉬어도 지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집에 와서 누워있다가 뭔갈 써야겠다 싶어서 기록을 남긴다.
이렇게 살고 있다.
내일은 좀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좀 덜 죽고 싶었으면 좋겠다.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