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2019)

왜 나의 영혼을 지키며 삶을 살아야 하는가?

by 지태엽

왜 나의 영혼을 지키며 삶을 살아야 하는가? 누구나 언젠가 영혼에 쌓아둔 ‘삶’의 궤적으로 남은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내게는 되도록이면 지키는 규칙이 있다. 영화나 소설 등, 웬만하면 스포일러를 찾아보지 않을 것. 여력이 된다면 한 번 더 볼 것. 이유는 스포일러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건 단 한 번 뿐이고, 내용을 머릿속에 입력한 채 보는 건 무한정 가능해 한 작품으로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기대하는 작품은 그런 식으로 감상하게 된다. <아이리시 맨>도 그래서 최소한의 정보만 입력한 채 보게 되었다. 긴 러닝타임을 함께 달리며 이 영화는 정보가 많을수록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럴 때는 한 번 더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 마피아의 살인청부업자 프랭크 시런이 그의 친구이자 노동운동 최고의 장악력을 보여주었던 트럭 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의 실종사건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논픽션 소설(아이리시 맨/I Heard You Paint Houses)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I heard you paint houses.

영화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문장이 대문짝만 하게 등장한다. 함께 영화를 봤던 사람 모두 이게 무슨 의미인가, 어리둥절한 채로 넘어갔다. 알고 보니 뒤 세계의 은어였다.

페인트칠을 직접 한다 = 살인 청부업자라는 뜻으로, 관객은 마피아와 연줄이 닿으며 살인청부업자가 된 프랭크 시런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영화는 노년의 프랭크 시런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플래시백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사실‘이라기보다는 개인, 프랭크 시런의 왜곡이 들어간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시런이 지미 호파를 살해할 때는 극적인 연출이나 대사는 하나도 없이 그저 총성과 피, 죽음만이 존재한다. 쓰러지는 지미 호파의 모습과 그 공간을 벗어나는 프랭크 시런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허무함. 화려함 하나 없이 툭 던지듯 주어지는 죽음이라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게 된다. 프랭크 시런의 복잡한 마음보다 그는 본인의 판단에 관계없이 주어진 일을 그저 ‘실행‘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지미 호파를 죽이는 장면은 풀 샷으로 잡혀있다.


이것은 미국의 마피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보여주는 영화라기보다는 그 모든 혼란의 세월을 거쳐온 노인에게 과연 무엇이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 프랭크 시런과 함께 뒤 세계에 발을 담갔던 인물들은 거의 죽었다. 지미 호파의 실종사건에 대한 진실은 그만이 알고 있다. 프랭크 시런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살았다고 하지만 가족들에게 그는 오히려 두려운 존재였다. (폭력의 힘을 알게 된 뒤 딸아이 앞에서 보였던 주먹질, 뒷세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딸과의 관계가 망가졌다는 걸 프랭크 시런은 끝까지 모를 것이다.) 이미 딸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요양병원의 간호사는 시대를 휘어잡았던 시런의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모른다.

쏜살같이 삶을 지나온 노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그렇게나 바쁘게 살았음에도, 그렇게나 위험한 사건들에 얽혀 있었음에도 남은 게 없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방패 뒤에 남은 가족 하나 없이 그는 요양병원에서 방문해 주는 사제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떠날 때, 문을 닫지 말라는 말을 할 정도로 허무와 고독에 시달리는 인물이 되어 있다.

카메라는 문밖에서 시런의 병실을 비춘다. 그래서 그 문밖에 누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작게 벌어진 문, 그 틈으로 방 안을 바라보는 건 스크린 앞의 관객이 된다. 외로운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보는 건 이 영화의 관객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프랭크의 모습이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그 ‘누군가’까지 관객이 아니었을까.

그대로 영화는 끝을 맞이한다. 문은 닫히지 않았기에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프랭크의 끝은 어떻게 될까. 삶의 궤적이 남을 영혼이 이미 모두 마모된 그를 바라보는 관객은 존재하나 그에게 말을 걸어줄 이는 없으니 아마 온기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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