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통과의례
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나의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지고,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의 분노가 사라졌다.
정말 신기했다.
재은이는 머리를 여전히 뽑지만 나는 욱하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나의 2019년이 흘러갔다.
9월부터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철저히 아이의 병을 부정하고 병원에 있는 선생님들마저 원망하고,
분노했던 암흑 같은 2019년도가 드디어 지나가고
있었다.
2020년이 찾아오고 나도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바뀌니깐 아이의 마음도 편해졌고,
집안에 웃음이 다시 찾아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재은이가 엄마가 없는 학교에 가서 머리를 뽑을까 봐 병원 선생님들과 걱정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계속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런 재은이에게 나는 이야기해 주었다.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보면 큰 재난인 코로나가 재은이 너 개인적인으로 보면 기회인 것이다.
이 기회를 꼭 잡아서 머리 기르고,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노력하자.”
라고 이야기하며 다짐을 했다.
이전에 비해 눈썹은 많이 났지만 조금씩 손을 댄 흔적이 있었고,
머리는 여전히 뽑지만 뭉텅이로 뽑았을 때에 비하면
몇 가닥씩 뽑으며 많이 손을 대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바로 아이가 안 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아직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발현적인 병이 가장 고치기가 어렵다고 한다. 재은이도 발현적인 병이라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뭉탱이로 뽑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자고 하셨다.
잦은 이사로 인해 환경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은이와 친정 근처에 정착을 했고,
중학교 1학년 여름에 마지막 전학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올라가는 시기에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소아정신과와 소아피부과를 다니며 재은이도
안정적인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재은이의 발모벽이 생기지 않았다면
내가 해왔던 나의 육아방식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내 기준으로 아이를 키웠을 것 같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된 아이와 사이가 완전히 안 좋아졌을 거고, 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둘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sns를 보면 남들은 아무 걱정 없이 웃으면서 여유롭게 잘 사는데 왜 나에게만 안 좋은 일들이 생기는지 원망하고 남 탓만 했던 내가 이번기회로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쁘게만 생각하면 끝도 없이 나쁜 일이지만
지금 돌이켜 19년도를 바라보면 아이도 자랐지만 나도 그만큼 성장했다.
나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진짜 엄마가 되고 있었다.
엄마라는 두 글자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은 상상조차 못 했지만 우리 재은이보다 더 아픈 아이들의
엄마들에겐 우리 재은이의 병은 사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에서 이런 일 밖에 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엄마라는 말을 처음 듣게 해 준 우리 재은이에게 고맙고,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 주고 믿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도 재은이는 여전히 발모벽과 ing 중이지만,
열심히 잘 노력해 주고 버텨주고 있어서 대견한
마음이 가득이다.
지금 고등학생인 된 재은이는 사춘기가 늦게 찾아오면서 나의 두 눈에 눈물을 쏙~ 빼기도 했지만,
그런 재은이가 더 행복하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게 아침마다 머리에 검정 흑채 대신 사람의 두피와 똑같이 가볍고 이쁜 가발도 선물해 주었다.
엄마라는 두 글자가 너무나 무겁고 버거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엄마이기에 나는 강해질 수 있었고,
지금도 해내고 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엄마들이 다 존경스럽지만 아픈 아이들과 매 순간 함께 마주하고 있는 엄마들인
그대들이 진정한 엄마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거기에 비하면 아직도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중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우리 재은이 덕분에 두 번째 스무 살에 공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4년 동안 열심히 유아교육을 공부해 장학금을 받고 졸업할 수 있었고,
3년 동안 원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더 이해하게
되는 멋진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엄마라는 두 글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내려놓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엄마라서 2025년도의 나의 여름은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