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같은 반에 친구가 없다. 그렇다고 왕따는 아니다. 학교 분위기로는 왕따 자체가 없다고 한다. 친구가 없어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꽤 익숙한 모습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중학교에 몇 명 있었고 그중에 아주 조금 친한 한 명이 같은 고등학교에 있는데 그마저 다른 반에 있다고 한다. 내 딸 인생 통틀어 친구는 4명 정도 있는 것 같다. 반기별로 방학 때나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우리 집에서 모임을 같거나 시내에서 저녁을 사 먹기도 한다. 모이면 모두 더치페이를 한다고 하는데 무한리필 고깃집이나 무한리필 샤부샤부 집을 주로 간다. 딸의 저녁 식사비를 몇 번 친구 계좌로 송금해준 적도 있다.
한 번은 지나가는 말로 자퇴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올초에 반에서 자퇴한 학생이 있었다고 남일처럼 말하더니 최근에는 자신이 고1이었다면 자퇴했겠다고 아쉬워했다.
이제 고3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뿐더러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기간보다 몇 달 다니기만 하면 졸업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학교가 가기가 싫었으면 마지못해 일어난 등굣길에 "교도소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인사를 해서 놀란적이 있다.
매번 꼭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꼭 가야 한다고 챙기는 날도 있다. 그날은 점심메뉴가 상당히 만족스러운 날이다. 아침부터 서두르며 "점심 먹으러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기분 좋게 나간다. 그런 날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는 우등생이어서 반 친구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우리 딸은 성적이 꽤나 부진하다. 고3인데 과외는 말할 것도 없고 학원 한번 가지 않았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는 시킬 수가 없었다.
여름방학 때 보충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난리여서 보내고 싶어도 결국 못 보냈다. 고3 기간 내내 학원비 한번 낸 적이 없다. 그나마 독서실은 애아빠와 간신히 타협해서 여름방학부터 다니고 있다. 우리는 딸애가 독서실에서 뭐하는지 사실 잘 모른다. 공부한다고 해서 그저 철석같이 믿고 있다.
우리 집에는 오래전부터 TV가 없다.
놀랐던 일중에 하나가 최근까지 '펜트하우스 3'을 종방 때까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휴대폰으로 보는 열혈 팬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고3인데 양심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딸애도 양심은 있었는지 괜스레 웃기만 했다.
우리 딸은 무뚝뚝하다. 마치 사내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 말수가 거의 없고 요구사항도 없고 안팎으로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 공부만 아주 못할 뿐이다. 올초에 담임 선생님이 딸애에 대해서 전화상담 중에 조심스럽다 하시면서 우리 딸이 '집순이'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맞다. 선생님이 정확히 보셨다. 물론 현재 성적이 서울에서 4년제는커녕 2년 제도 쉽지 않겠다고 솔직하게 알려주셨다. 아이는 집에 있으면 이불속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며 놀거나 자거나 한다. 책이라면 내가 더 많이 본다. 딸아이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부모가 책을 보면 아이가 따라 본다는데...
애아빠나 나는 공부에 대해서 강요를 하거나 아이에 대한 집착이 없다. 오히려 맞벌이 가정이라 방목하는 스타일이다. 간섭 없이 키워서 이리된 건지, 우리 어릴 적
환경보다 엄청 좋아져서 자기가 공부만 하겠다면 우리 집 기둥뿌리라도 뽑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고 2 여름방학 무렵부터 지금까지 살이 엄청 쪘다.
쵸코렛을 유달리 좋아하는데 돈만 생겼다 하면 먹는 걸로
다 써버 린다. 심지어 몰래 숨겨놓고도 먹는다. 뭐라 할까 봐서 과자봉지며 빈 껍데기들 흔적을 없애려다 들킨 적도 있다. 아토피 피부염이 있어서 조금만 관심 있으면
알아차릴 수가 있다. 몸에 안 좋은 거 먹으면 피부에 발진이 올라와서 밤새도록 가려워서 긁느라고 깊은 잠을 못 잔다. 귀찮지만 걱정은 되었나 보다. 방학이 되자마자 생리불순까지 와서 산부인과에 가보니, 의사 선생님은 갑자스럽게 살찐 것이 원인 같다며 살을 조금씩 빼보라고 권했다.
여름방학중에 고민이 많았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지만, 두 마리 토끼는 잡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보다는 살 빼기를 택했다. 방학 동안에 건강을 위해서 저녁을 일찍 먹든지, 칼로리 높은 음식은 피하자고 알아듣기 쉽게 딸애에게 인센티브를 걸어가며 실천해보자고 격려했다. 고3이라 공부가 더 급하지만 나만 답답할 것 같아서 공부는 현상유지가 오히려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어려운 수학이나 영어보단 한입이라도 덜 먹는 쪽이 낫겠다는 실천 가능한 쪽으로 딸애가 내 본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두 가지다 개선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걸었다.
몇 개월 전, 나는 딸만 생각하면 그냥 막 울고 싶었다.
강제적으로 모질게 키운 것도 아닌데..
부모라고 자식이 부끄럽게 생각될 만큼 살아온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공부는 최하위권이지, 미련스러울 정도로 먹을 것만 찾지,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추석 때 받은 용돈으로 연휴 끝난 이틀 후에 지하철을 타고 짱구 캐릭터로 된 텀블러와 지갑과 공책 등 소품을 사러 이제껏 살아도 가 본 적이 없는 생소한 동작구까지 갔다 오기까지 했다. 총정리 문제집을 사도 모자랄 판에 우리 딸은 7살짜리 떡잎마을에 사는 일본 만화 주인공과 여전히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 휴대폰 카톡 프로필도 짱구 사진이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푹 빠져 있는 딸애의 자신감 없는 위축된 표정과 둔한 몸집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19살 내 딸이 왜 그러는지, 뭐든 입으로 마구 넣어서 아침이면 얼굴에 여드름보다 더한 노란 고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가 보다.
(출근 전에 애아빠가 매일 과일즙과 녹즙, 양파즙을 번갈아 가며 만들어 놓아서 그나마 피부가 좀 낫다)
설령 뚱뚱해도 얼굴이 안 이뻐도 당당했다면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행여 남들이 쳐다봐서 상처라도 받으면 어쩌나 싶다. 집에만 숨어 있으면 어쩌나 싶다. 그 예쁜 나이에...
저 나 이땐 눈빛이 반짝반짝 살아 있어야 하고, 햇살처럼 발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곧 20살이면 한창 예쁠 때인데 대학은 고사하고 자신 있게 밖이라도 잘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딸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깥에서 애아빠와 나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애써 못 본척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낯선 사람과 함께 있으면 우리를 외면하듯 급 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집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닌데도 말이다. 어이가 없지만 소심한 아이의 모습이려니..
수능까지 이제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다.
내 바람은 딸이 수능시험을 무사히 치르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를 그저 그렇게 지내오면서 어쩌면 다른 학생들의 들러리로 내리 12년을 보내왔을 딸이다. 의미 없이 공동체 생활에서 의무감으로 적게는 초등 때 4시간부터 시작해서 많게는 고3 때까지 무기력하게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내왔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차이만 있을 뿐
영리하지도 영악하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올 뿐이었다.
나는 그 시절을 한번 살아본 경험이 있기에, 마음이 조급 해지는 것이다. 삶의 지름길이 보이는 것처럼 느리 걷고
있는 딸에게 조바심만 쌓이는 것이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더 어렵고 힘든 사회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분명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들러리든 아니든 내리 12년을 먼저 견뎌봤기에 넘어져도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아무렇지 않게 보란 듯이 마음 근육이 단단해졌고, 혼자만의 고독했던 시간을 가져봤기에 자신의 길을 찾아 멋지게 걸어가기를 나는 소망한다.
2021.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