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후속작은 막중한 부담감을 짊어진다. 겉보기에는 대중에게 검증받은 영화를 기반으로 하니 단단한 받침돌을 가진 셈이므로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창작하기보다 쉽다. 흥행할 만큼 짜임새 있는 설정도 존재하고 인기 있는 캐릭터도 사용할 수 있으니 흥행 수표를 보증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명작의 후속작을 만드는 작업 자체는 쉬울지 몰라도 그것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점은 만만하지 않다. 탄탄한 설정을 활용하지 못하거나 캐릭터를 엉뚱하게 사용하는 감독은 좋은 장비를 가졌으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바보라고 소문이 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수익을 거뒀음에도 1편의 성적이 저 멀리 까마득하게 있어서 그저 그런 속편이라는 악평을 받는 영화도 많다. 그마저도 성취하지 못하면 “차라리 다음 편이 나오지 않았다면 좋을 시리즈”라는 꼬리표가 붙어 1편의 명성까지 바닥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 가령 최근에 나온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나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이전에 흥행한 영화에 비하면 평론가와 대중 양쪽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반대로 “탑건: 매버릭(이하 탑건 2)”은 대중은 물론이고 평론가까지 완벽한 속편이라며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탑건 2가 흥행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관객이 클리셰를 바라게끔 했다. 둘째, 모든 장면에 군더더기가 없다. 셋째, 전작의 장점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세 가지 모두 많은 수익을 거두려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요소지만, 어느 하나를 충족하지 못해 실패한 영화가 많다. 허들은 일직선으로 된 길에 똑바로 세워져 있지만 세 번 모두 완벽하게 넘기란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가 알아도 실제로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을, 탑건 2는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관객과 평론가를 모두 만족시켰을까?
관객이 아는 맛, 클리셰
탑건 2는 클리셰를 적극 활용했다. 보통 클리셰를 남발하면 예상이 가는 뻔한 영화라는 평을 듣기 십상이지만, 반대로 관객이 클리셰를 바라게끔 긴박감을 조성하면 오히려 가점이 될 수 있다. 극중 매버릭은 명령불복종으로 최소 1조는 될 법한 유인기 다크스타를 박살내고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아이스맨의 개입으로 탑건 교관 복귀라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위기→기회). 또한 그는 죽은 옛 친구에게 제 삶의 의미를 물을 정도로 35년 동안 친구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파일럿이 된 친구의 아들 루스터를 마주하게 된다. 루스터는 원서 거절로 4년을 허비하게 한 매버릭을 원망했지만 후반부에서 갈등이 풀리고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관계를 회복했다. 이를 통해 매버릭은 루스터와 찍은 사진을 가장 앞쪽에 붙임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극복할 힘을 얻는다(상처 극복/관계 회복). 훈련할 당시에는 매버릭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임무를 성공하지 못했지만 실전에서는 두 번의 기적을 모두 이루어 목적을 달성한다(임무 성공). 적군의 톰캣을 타고 귀가하는 매버릭과 루스터는 5세대 전투기와 마주하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그들의 동료인 행맨이 등장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구원자/생존). 심지어 타인의 구원은 설원에 떨어진 매버릭이 적군의 헬기를 마주한 순간에 루스터가 등장해 헬기를 박살내는 것으로 앞쪽에 한번 나왔었다.
임무도 성공했고 죽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며 위기의 순간에 다른 사람이 달려와 구해주는 클리셰가 두 번 연달아 나와도 밉지 않은 이유는 관객들이 클리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영화는 관객이 클리셰를 봐도 "뻔하네".가 아니라 "이런 걸 원했어!"라고 맞장구를 치도록 서사를 차곡차곡 잘 쌓았다. 설원에서 루스터의 등장은 생각하지 말고 움직이라는 매버릭의 조언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매버릭은 본인이 못해서 설원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루스터를 구해주느라 미사일을 맞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관객은 자연히 루스터의 도움을 바라게 되고, 실제로 루스터가 도와주러 와도 개연성 있는 등장이기 때문에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루스터에게 밀려 항모에 대기하는 신세가 된 행맨도 마찬가지다. 행맨은 루스터의 라이벌 포지션이지만 임무에서 활약할 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매버릭이 미사일에 맞자 대기하라는 본부에 맞서 계속 출격을 요청했다. 심지어 톰캣이 항공모함을 향해 날아오자 본부는 그게 매버릭임을 알아챈다. 이러한 장면이 있기에 관객은 아까까지만 해도 항공모함에 붙잡혀 있던 행맨이 5세대 전투기를 박살내도 "역시 주인공은 끝까지 안 죽네."가 아니라 "잘했다, 행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성공적인 클리셰는 곧 관객의 니즈를 충족하게 된다.
이유가 있는 장면들, 완성도
탑건 2는 필요 없는 장면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구멍이 나지도 않았다. 제작자는 관객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여 장면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바를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담아냈다. 가령 임무를 설명하는 시뮬레이션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임무를 기억할 만큼 잘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질릴 만큼 반복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훈련 단계마다 적군의 대공포가 작동하는 기준 등의 추가 정보를 넣어 보여주니 지겹지도 않다. 특히 전작이 있는 영화인 만큼 전작을 모르는 관객도 영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작을 봤어도 후속작이 나오기까지 35년이라는 간격이 있어 세세한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도 수두룩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작자는 플래시백을 필요한 요소에 적절히 활용했다. 플래시백이 너무 자주 나오면 현재와 과거가 헷갈려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 늘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영화 초반부쯤 플래시백이 등장해 매버릭이 루스터에게 지닌 부채감을 확실히 묘사하고 이후로는 후속작치고 드물게 나왔다. 제작자는 플래시백이 지지부진하게 등장할 시간을 아껴 다른 필요한 장면을 묘사했을 것이다. 탑건 2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장면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으며, 모든 시퀀스는 존재 이유가 있다.
제작진은 필요 없는 장면을 쳐내서 얻은 시간을 알차게 썼다. 관객들이 탑건에 기대하는 액션뿐만 아니라 흥행에 있어 필수적인 로맨스, 전우애, 가족애를 적절히 엮어냈다. 일단 액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영화는 관객이 영화를 다시 볼 만큼 스릴 넘치는 공중전을 스크린을 통해 그려냈다. 공중전 특유의 기체 간 전투와 기체끼리 얽혀서 싸우는 도그파이트의 묘사는 웬만한 히어로 영화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액션감이 넘쳤다. 특히 마지막 작전은 앞에서 계속된 훈련 장면이 있었음에도 설원 배경이라는 점, 항로를 막는 다리의 등장, 순찰 중인 적기와의 만남이라는 예기치 못한 요소를 도입해 지루하지 않게 했다. 이외에도 매버릭이라는 캐릭터를 집중 조명해 페니와의 로맨스, 아이스맨과의 전우애, 루스터와의 가족애를 적절한 비율로 엮어서 쉴 틈없이 관객을 즐겁게 해주었다.
전작에 대한 예우, 활용력
탑건 2는 탑건 1의 좋은 점을 벤치 마킹해 적극 활용했다. 알다시피 탑건 1은 개봉 당시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였다. 탑건 2는 이 좋은 자산을 하나라도 빼뜨리지 않은 덕분에 흥행은 물론이고 탑건 1이라는 35년 전 영화에 더욱 깊은 의미를 만들어 주었다. 우선 이 후속작은 전작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오프닝씬, 노을 지는 배경을 뒤로 한 모함의 모습을 무게감 있는 BGM을 그대로 가져왔다. 전작에서와 같이 매버릭은 영화 시작부터 거대한 사고를 치고 예상치 못하게 탑건으로 발령받는다. 매버릭은 35년이 지났음에도 항공 점퍼를 입고 똑같은 브랜드의 오토바이에 올라 똑같은 시계를 찬 손으로 떠오르는 비행기와 함께 달리는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인기가 등장하고 5세대 전투기가 하늘을 활공하는 시대에 F14의 재등장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특히 초반부에서 무인기를 선호하는 제독에게 언젠가는 무인기의 시대가 오겠지만 오늘은 아니라고 대답하는 매버릭의 대사와 오버랩된다. 그리고 전작에서 아이코닉했던 해변의 비치 발리볼씬을 풋볼로만 바꾸어 그대로 그려냈다. 매버릭이 씨익 웃으며 선글라스를 올리는 장면도 빼놓지 않았다.
캐릭터를 활용함에 있어서도 탑건 2는 전작을 존중했다. 전작의 라이벌이었던 아이스맨은 무려 별 4개의 사령관이 되어 있었다. 그는 매버릭이 비행을 계속하게 해줄 만큼 좋은 인성을 가지기까지 했다. 루스터는 전작에서 죽은 구스의 아들인데, 아들답게 전작에서 구스가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똑같이 ─ 어쩌면 더욱 잘 ─ 수행했다. 이는 전작의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관객들이 루스터는 구스의 아들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장면이다. 그 시절 캐릭터의 유산은 35년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까지 한다. 또한 과거에 매버릭과 아이스가 경쟁했던 모습을 탑건 2에서는 루스터와 행맨이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루스터와 행맨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결국 멋진 전우애를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과거의 두 사람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35년이 지난 지금,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죽는 모습을 좋아할 탑건 팬은 없다.
이처럼 탑건 2는 관객의 니즈를 성공적으로 충족시켰고, 풍부한 컨텐츠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완성도를 높였으며, 전작을 활용하여 설득력 있고 뜻 깊은 스토리를 만들었다. 탑건 2의 성공을 본받아 앞으로 나오는 속편 영화는 영화를 팔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클리셰를 잘 활용하고, 전작의 명성에 기대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스토리를 완성도 있게 내놓아야 하며, 이미 존재하는 설정과 캐릭터를 전작 그 이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하겠다. 탑건 2는 업계가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제작자가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다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고 유명한 영화의 2편이나 잘 팔린 원작의 영상화를 선호하는 오늘날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