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돈 덕분에.

기꺼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없을까?

by 와일드 퍼플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사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는 메시지를 받고 꿈을 꾸지만 막상 매달 월급날 통장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빠져나가는 돈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그날 들어온 월급은 5일도 채 되지 않아 카드 값, 세금, 보험료, 자기 계발비,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뭘 좀 사려고 하면 또 미래의 돈, 신용카드를 슬며시 꺼낸다.


돈을 쓰면서도 가장 속이 쓰릴 때가 있다. 몇 년을 아끼고 모아둔 돈을 내가 의도치 않게 써야 할 때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투자금이 빚이 될 수도 있고, 친인척 보증을 서서 실패로 끝났을 때, 감정이 앞서서 때로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끼리 피해를 가리기 위해 이해관계 속에서 법률을 지켜야 함에 따라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다. 또 인생을 살면서 때를 맞이하고 행사를 치르는 시기에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 가장 큰 행사인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돈 때문에 속이 상한다. 신혼을 앞둔 커플들이 예식을 치르기 전 많은 상담을 하지만 겉으로 말은 못 해도 돈 쓰는데서 속 쓰려 갖가지 서운함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서로 성격 차이라고들 말 하지만 돈을 쓰는 범위나 영역면에서 생각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부부가 된다고 약속한 이상 서로의 인맥이 하나가 되는 것은 인정했기 때문에 양쪽 부모님이나 가족, 지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지금껏 써본 적 없는 돈을 쓰게 된다. 지금까지 열심히 번 돈을 결혼이라는 행사를 위해 통장을 모두 털어 집을 마련하고 또다시 벌고 모으는데 집중한다. 그러고 나면 얼마 가지 않아 출산과 양육을 하면서 소득과 지출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살 곳을 마련하고 살림, 교육, 저축에 배분했던 나만의 경제적 계획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만큼만 써도 되는데 내 아이들과 남편과 아내는 그 이상의 것을 원할 때 속이 참 쓰리다. 살아왔던 각 개인의 문화 수준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평범하게 우리 삶을 그려낸 것 같은 뻔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돈에 대한 관점을 돌아보고 싶어서다.


2020년 2월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또한 뜻 하지 않는 지출과 수입의 격차가 생기면서 경제적인 관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사업하는 사람 불문하고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월수입에서 변동이 일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야만 일을 할 수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멀리해야 하다 보니 수입의 75% 감소의 격차를 겪어내야만 했다. 규칙적으로 지출을 해야 하는 범위가 있는데 25%의 월 수입으로만 버티려니 있는 돈, 없는 돈 다 쓸어 모아서 버텨야 했다. 적지만 내 피같이 모아놓았던 돈을 그때그때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현재의 모습을 보고 비참함을 느껴야만 했다. 5년 고생해서 모아논 돈을 내 잘못 만이 아닌 세상의 울부짖음이 만들어낸 변화 앞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1년 사이에 코로나라는 거대한 바이러스는 시대의 변화를 촉진시켰고, 일을 하는 방식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모든 부분을 변화시켜 놓았다. 나는 그때 2번째의 가난을 겪었다. 정말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재산의 상실을 아마 이번 2020년 코로나 사태를 통해 많은 가정들이 작게나마 느껴봤을 것이다. 이렇게 상실감을 겪으면서 돈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돈의 본질을 알아야만 했다. 더 이상 돈이라는 것 때문에 불안에 떨고 싶지 않았다. 돈에 대한 부정적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경제관념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성공한 부자들의 강연을 듣기 전에, 그들의 역사를 담아놓은 책을 찾아보았다. 천천히 고민하고 습하고 싶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입 모아 말했다. 돈은 예쁜 것이라고. 걱정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등한시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돈을 강하게 원하면서도 돈을 좋아하지 않는 척을 하고 살았다. 그것도 35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러면서도 돈을 꽁꽁 움켜쥐고 싶어 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욕심을 내는 것이었나. 모순자로서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돈은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쓰이는 것임을 안 것이다. 그리고 예전엔 돈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기꺼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돈을 안전한 곳에 모셔놓고 돌보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쓰임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이 나의 일꾼이 된 것처럼. 나를 위한 일꾼은 나를 가꾸어 줄 것이고, 나를 모실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일꾼은 자기 주인의 수준만큼만 일을 할 것이다. 내 주인이 자상하고 자비로우면 나와 일하고 싶은 일꾼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자신이 가치롭게 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진정한 부자가 될 것이다. 돈이라는 대상의 본질적 성격은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어딘가에 쓰임을 당할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주인이 나의 의사를 무시하고 쓰임을 알아주지 않을 시에는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잘 생각해보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꽁꽁 내 돈이라고 숨겨두고 모아놓은 돈은 예기치 않게 통째로 내보내야 할 때가 허다했다. 살아 있는 생명력이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카드라는 것을 통해 만나지도 못한 돈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과거엔 매달 1200만 원의 월 수입을 1000만 원 이상의 카드값으로 내보냈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1000만 원의 일꾼들을 빌려 쓰고 버렸을 것이다. 이제는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게 되었고 작은 돈,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큰 마음을 얻었다. 물론 지금도 큰돈이 들어오면 모셔두고 싶은 사고방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럴 때 내가 지금 노예인지 주인인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은 순간의 감정 때문에 돈을 모으고자 하는 것은 노예이고, 작은 돈들을 모아 더 큰 힘을 부여해서 기꺼이 쓰고 싶은 곳에 쓰는 사람이 돈의 주인이라고 스스로 답을 내어 실행하고 있다. 나와 같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돈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려는 꿈 꾸는 자들에게 외치고 싶다. 나와 함께 하자고. 돈 덕분에 내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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