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쓰기 모임에 멤버인 미정 씨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귤이라는 글을 소개했다.
읽는 내내 우리 세대의 어린 누이 모습과 다를 바 없어 가슴 한복판이 아릿했다. 오죽해 첫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했을까. 가난한 부모를 가진 맏딸이 초라한 보따리 하나 들고 돈벌이에 나서야 했고, 두고 가는 어린 남동생들이 안타까워 달리는 기차 창문을 열고 힘껏 던져 준 귤 대여섯 개는 낯선 길에 나서며 목이 타고 허기질 딸에게 쥐여준 엄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먹을 거라곤 찐고구마나 엄마가 대충 버무려 만든 사카린 들어간 밀개떡이 전부이던 겨울날, 타지에 나가있는 언니가 어쩌다 들고 오는 얇게 쪼갠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바구니 속 배와 사과 틈에 한두 개씩 들어있던 주홍빛 선명한 미깡은 혼자 온전히 하나를 먹을 수없는 귀한 과일이어서 접시에 깎아놓은 사과나 배 위에 하나씩 떼어 고명처럼 올려졌고 한두 조각 얻어먹는 게 다였다. 시간이 지나 미깡은 귤이라는 이름을 달고 과일가게는 물론 노점상 리어카마다 수북하게 쌓아놓고 파는 겨울 대표과일이 됐다.
내가 아이들을 기를 땐 귤 생산량이 넘쳐 농협에서 부녀회를 통해 강매를 해 어느 집이나 귤상자를 쌓아놓은 채 먹었고,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고무장갑을 벗으면 손이 노란색이 돼있었다.
혹시 황달인가? 걱정돼 갔던 병원에서 손을 살펴보던 의사에게 "귤 그만 먹어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순전히 귤값이 싸서 생긴 일이었다. 귤나무 한그루면 자식 대학등록금을 댄다던 때도 있었다지만 그때는 겨울만되면 귤이 조선팔도를 뒤덮고도 남을지경이었고 그 후로도 쭈욱 겨울엔 귤이 넉넉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싼 과일의 대명사였던 귤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비싸졌고, 딸이 싼값에 낚여 주문한 주먹만 한 귤이 한 상자 도착했다. 커도 껍질과 과육이 착 붙어있으면 달고 맛있는데 집어보니 푹신푹신 껍질이 겉도는 게 맛있기는 틀렸다. 괜히 귤 사고 눈치 보는 딸에게 '시원한 맛으로 먹자'라는 말로 인심 쓰고 바구니에 몇 개씩 담아 식탁에 올려놔 남편 혼자 다 먹었다.
요즘은 같은 듯 다른 듯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또 조금씩 차이가 보여 구별할 수는 있는 귤 종류가 많아 골라먹는 재미까지 있다.
꼭지를 뚜껑 열듯이 옆으로 젖혀 두툼한 껍질을 벗기는 한라봉, 오렌지처럼 동그랗고 칼로 껍질을 벗겨야 하지만 과즙이 넘치고 캘리포니아 오렌지보다 맛있는 황금향, 가운데가 옴폭 들어간 애기방석 같이 생겼으나 상큼한 레드향에
장마당 찐빵 같지만 이름은 우아한 천혜향까지.
그야말로 귤들의 전성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