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쟁과 비판에도 동료성이 필요하다 (동료성은 동료애와 다르다)
1. ‘리더’라는 말의 이중성
- “좋은 리더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조직 기강 다 무너집니다.
존경받는 리더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조선시대 아닙니다.
그저 함께 일하기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제가 교감이 된 후 조직과 리더에 대해 고민이 깊어져 많은 책을 보고 강의를 들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말입니다.
‘리더’라는 호명이 갖는 이중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리더에게 지나친 권력을 부여한 후 모든 것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조직의 리더가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조직의 일원으로서 했어야 하는 일은 없는지 말입니다.
학교에서는 ‘리더’보다는 함께 일하기 좋은 ‘직분이 다른 동료’ 정도면 좋을 듯합니다. 물론 호봉도 단일 호봉으로 가야할 거 같고. 각종 예우도 다 집어치우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교장 교감이 일하기도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2.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아주 오랫동안 민주시민교육 전문가인 척 살았습니다. 의견수렴, 평등, 연대, 평화..
그러나 지난 5년간 민주주의의 발달이 절차적 기계적 의견수렴과 다수결로 인식되고, 결국 수시가 정시로 바뀌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껍데기만 남고, 차별금지법이 거부되고, 종부세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도 자주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고 모든 정책 결정을 공론화, 의견수렴을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그 결론에 반대하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겠다”라는 사람들은 더 늘어난 느낌입니다.
합의의제와 책임의제는 구별되어 사고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많은 사람이 지지한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며, 모든 결정에는 전문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적합한 위원들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투입되어야 하고, 자기 자리에서 직분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의 평등한 행복을 위해서는 권한의 합리적 위임도 필요합니다.
자유와 평등의 패러독스를 사안과 맥락에 따라 적절히 고민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싶습니다.
*합의의제 : 서로의 의사를 물어 합의해서 결정할 의제
책임의제 : 민주적 절차와 권위를 바탕으로 결정하고 집행한 후 결과에 따라 책임지게 하는 의제
3. 학교에서의 민주적 토론과 토의
교육과정 평가회에서 저는 레드팀, 반대의견을 강조했습니다. 우리학교가 빠지기 쉬운 맹목적인 화목, 자학적인 방조, 1인 권력에 대한 권한 부여와 그에 따른 책임 전가를 방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전제되어야 합니다. 동료성 말입니다. 단, 동료성이 곧 동료애는 아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학교의 어떤 업무도 누구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잘해도 개인 덕분은 아니고, 못해도 그 사람만의 탓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비판할 때, 그 대상이 교사 또는 교감, 교장 개인이어서는 안됩니다. 반대의견을 낼 때도 동료에게 비수를 꽂는 형태는 아니어야 합니다.
공론화가 ‘누구의 탓인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정확한 사안의 맥락, 근거, 사정을 파악하고 ‘함께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법을 찾기 위한 논의여야 하기 때문에 공론화하는 것입니다. 학교는 특히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맡고있는 기관이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업무적으로 어떤 불만이 있을 때 교장과 교감을 찾아가 시정을 요청하는 것은 관리자들의 권력과 권한만 키워주는 꼴입니다.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가시 돋힌 말을 쏟아내는 것도 상처와 갈등만 일으킬 뿐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관련 부장, 교장 교감과 일단 협의하여 내용을 공유하고 문제 처리의 방향을 논의한 후, 상호간 협의를 통해 해결할 것인지, 기획회의, 각종 위원회를 통해 공적으로 논의할 것인지를 정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감정이 섞일 수밖에 없을 때는 문서로 정리해 각 단위에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4. 2021년 교감의 최대 고민
교감으로 일하면서 저의 최대 고민은 “주어진 권한으로 밀어붙일까?” “오래 걸려도 시스템화로 진행할까?”였습니다. 물론 둘다 병행해야 한다.가 정답이겠으나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었습니다.
‘수업나눔’을 전교사가 함께 해야 한다고 정하는 것까지는 작년에 권한으로 제기하고 타당성으로 설득하여 절차를 통해 밀어붙였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상황이 되자 그간 창문 너머로 잠깐씩 훔쳐보던 교실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업 부실에 대한 불만 사항은 안팎에서 끊임없이 접수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았을까요?
“교감이 모든 교사의 온라인 수업을 한번 이상씩 볼 예정이니 각 학급에 저를 초대해주세요” 할까요? 교감에게 주어진 권한 행사지만, 감시하겠다는 거죠.
“예정되었던 수업나눔은 온라인으로도 진행하겠습니다. 해당 부서와 학년부는 협의 진행하셔서 알려주십시오.” 해야 하는 걸까요? 원래 하기로 했던 수업나눔이고, 함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반발은 많았을 것입니다만 동료성이 빛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둘 다 못했습니다. 장기화되는 온라인 상황에서 차마 부담을 얹어주는 행동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후회합니다. 후자를 선택했어야 하는데. 자발적인 움직임에 잠시 숟가락을 얹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어려웠겠지만, 그만큼의 성과와 성장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다음에 학교에 가면 꼭 할 겁니다.
공무원으로서의 교사가 직분을 완수하도록 하려고 밀착 감시하는 것보다는, 모든 교육자가 맡은 직분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를 일깨우기 위해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교감의 일이라고 아직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서서히 익어가도록, 그러나 썩어버리지 않도록
"삼천리 한반도 금수강산을 가슴에 품고 사는 대한의 자녀
미래의 주인공으로 자라 우리들 상하의 베트남 여기 모였다
아 정직 봉사 개척 한국학교 영원하여라 영원하여라"
처음에 우리학교 교가를 듣고, 정말 고전적이고 집단주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 6개월 이 학교의 구성원으로 살아낸 후 졸업식에서 이 교가를 듣는데, 그제서야 이 노래에 이곳 학부모와 아이들, 교민들의 마음이 잘 담겨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학교의 낯선 환경과 낯선 제도, 규정, 운영방식을 서서히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애정도 생겨나고, 이해를 바탕으로 비판하고 혁신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익숙해져서 썩어버리지는 말아야겠지요. 방부제 역할을 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 학교는 왜 이래?”도, “재외학교는 원래 그래”도 너무나 위험합니다.
오. 방학 D-15, 해피 홀리데이입니다.
귀국 D-48, 짐싸기 좋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