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과 나희덕

요즘 수다가 뜸했던 강화정 샘이 시를 보냈다. 박준이라는, 시인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분이었다.

한때 시집 모으기가 낙이었던 나로서는, 처음 듣는 시인이었는데, 시가 참 좋았다.

(시를 이렇게 올려도 되나, 문득 저어되어 저작권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는데, 아직은 크게 문제가 되는 내용은 없었다.)

박준, 설령.jpg

50살이 넘고 삶이 지루해졌다.

일단은 내가 맡은 일이 번잡하지는 않지만, 무게가 더 나가는 일이다. 자리를 지키고, 누군가 나를 찾을 때 있어주고, 찾아주고, 대화하고 해결해주는 게 나의 일이다.

그러자면 나부터 중심이 있고 피곤하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해서, 일상의 루틴만큼 중요한 게 없어졌다.

5시40분에 알람이 울리면 조금 밍기적대다가 일어나 씻고, 유찬이 아침 주먹밥 만들면서 간단히 식사하고

7시에 내려가 시동걸고, 7시10분에 유찬이 실어다주고, 학교 오면 7시 45분쯤.

샘들 다 오기 전에 학교한바퀴 돌며 애들이랑 인사하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요즘은 애들 데려다주는 학부모 차들로 교문앞이 혼잡해서 그거 안내지도 하고 올라오면 8시다. 아침의 즐거움인 커피 한잔 내려 마신다.


교감 3년차라, 이젠 뭐 그리 애써서 할 일은 없고, 샘들도 올해는 다 잘 해주셔서 편안하다.

업무포털 들어가 이것저것 하고, 보고할 것이나 메일 등등 하고 나면 잠시 짬이 나면 뉴스도 보고 일본어 공부도 하고, 그러다 다시 업무포털로 일 처리. 샘들이 오시면 이것저것 처리하고..

밥먹고 학교 한바퀴 돌면서 혈당피크를 막고, 또 4시까지 이것저것.


칼퇴가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서 웬만하면 칼퇴. 5시 전에 집에 도착하면 얼른 밥을 먹는다.

채소, 단백질, 곡류를 1/3씩 채운 간단한 한접시 식사. 이때는 와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게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집에 술을 안사둔다. 이러다보니 주량이 메롱이라, 얼마전 신부님 희숙이 만나서는 소주 한잔에 핑도는 느낌에 잔을 받지 않았다.

월, 수 7시30분엔 필라테스를 가고, 화,목,금,토,일 중 3일 이상 실내사이클을 탄다. (40분씩)

주중엔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이 최선인데, 어쩔 수 없을 때가 자꾸 생겨서 힘들다.

학교에서와 집에서 2시간 정도 일본어 공부를 하는데, 7월 시험을 위해서는 이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으아. 너무 어려울 거 같아서 겁난다. 수험서 가지고 와야지 내일.

운동 끝나고 씻고 또 좀 쉬거나 공부 하다보면 아들이 온다. 너무 졸린다. 아들이 배고프면 뭐 좀 마련해주고, 아니라면 그냥 들어가 잔다. 11시 30분엔 자야 다음날 잘 일어날 수 있다.

토요일에는 하루종일 집에서 나가지 않고 책을 읽는 게 목표, 일요일엔 4월까지 오전 3시간 일본어 수업.

엄마한테 안간지 1달이 넘을 듯. 윽.


작년에 제일 잘한 일은 필라테스와 일본어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지루하고 평탄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고 뭔가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너무 휘몰아치지 말고 찬찬히 계속 평탄하게 유지하고 싶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이 좋으면서도 두려운 이 이상한 양가감정.

교감 자리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면 어쩔 땐 점심시간 말고는 대화를 하지 않는 날도 있다.

동료가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일인지 교감 초기에 많이 힘들었지만, 이젠 그또한 나라는 걸, 나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내에 나가도 딱히 더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일만 마치면 바로 귀가하고 싶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그 후가 성가셔서 굳이 안하게 된다.


오분간.jpg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때가 있었는데.ㅎ 사람들을 모아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 일일 때가 있었는데. 실컷 했으니 됐다. 나의 몫은 그때 다 하였다.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지지하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가장 길고 짙고 높은 중년-노년이라는 계절의 밤을

책, 음악, 영화, 그림으로 나의 내면을 자꾸만 채워가는 것.


나희덕의 이 시를 처음 읽었던 때가 아들이 20대가 되었던 즈음이었던가.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왔고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있었다.

그때 이미 알았다. 내 삶과 맞바꾼 세월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이제부터 다시 기다림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냥 풍경처럼, 오래된 나무처럼, 그들이 일할 때 부족한 나사 하나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 자리 또한 언젠가 다른 이의 삶과 맞바꾸게 되겠지.

한무더기 지는 꽃잎이지만, 또 그리 밉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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