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츠코이,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여기서 기다릴게, 괴물
교감이라는 자리는 뭔가 좀 애매하다.
처음 교감으로 부임하면,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고칠 것들이 눈에 띈다.
이 학교가 어떤 부분에 열심이고, 어떤 부분은 무시하는지
누가 학교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닥치고 있는지
학교가 무엇때문에 어려운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뭐든 정리하고, 그것의 해결책을 적절하게 고민해내는 것이 나의 할일.
그동안 살아오면서 생각한 것, 공부한 것, 경험한 것, 모아온 것들이 힘을 발휘하는 때가
바로 이때.
그러나 수평조직인 공립학교에서 그것들을 금새 실행에 옮기기는 너무 어렵다.
기다리고 설득하고 다가가고 거리두고 무시하고 지시하고 협의하고...
교감을 하다보면 마음에 스크래치가 많이 난다.
의도를 곡해하여 비난하거나 자기 시각에서만 보고 폄훼하거나
짧고 좁은 경험에 비추어 뒷담화를 신나게 진행하는 대졸자들을 신물나게 많이 보게 된다.
너무 기가 막히고 자존심 상하지만,
하나의 목표 아래 대동단결 하느라 작고 조그만 목소리들을 무시하게 되는 것보다는
이런 과정이 있는 게 낫다. 그래야 나 또한 그들 중 하나라는 것도 알게되고
결국 하고 싶은 일의 정도를 조절하거나 천천히 논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나 혼자라면 한달이면 할 것을, 3~4달이 걸려 민주주의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크래치를 치유하지 않으면 곪거나 터지고 피가 다시 흐른다.
나만의 치유방법을 개발해내는 것도 교장도 교사도 아닌, 그 사이에서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교감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일이다. 교장은 아우라가, 교감은 조직운영능력이 너무나 필요하다.
사실 학교의 실질적 운영자는 교감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가 교감이 제일 미치게 바쁠 때이다. 평정, 다면평가도 힘든데 전보처리, 정원확정 등이 방학전에 초근을 부르고, 1월 잠시 숨죽이다보면 다시 전보와 기간제 계약, 업무분장 조정, 부장 선임, 업무분장, 교사 배치 등 새학년도 준비로 하루도 쉴 틈 없이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하필 이 시기는 교사들의 욕망이 폭발하는 때라서 교양있게 자기의 과녁을 피하느라 화살이 교감에게 와서 꽂히는 때가 부지기수다.
멜로영화 사랑영화는 좀처럼 보지 않는데, 이 시기엔 사랑영화가 땡긴다.
경험상, 사랑 중에서도 첫사랑 영화가 특효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도'를 아는 중용의 마음이다.
나 아니면 안되다는 생각이나, 교육을 위해서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여기서 안하면 큰일날 것처럼 안달하는 것은 독이다.
부처도, 악귀도 될 필요가 없다.
그저 같이 일하기에 적당한, 가끔은 방향과 방법을 슬쩍 찔러줄 수 있는
그 정도의 교감이면 된다. 안되면? 다음에 하면 된다. 싫다면? 안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안녕이다.
그래야 교육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아실현? 직업에서 하려고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