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1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며칠전 고3 둘째 아들이 자습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야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 횡단보도 건너는데, 어떤 모녀가 있었어. 애기가 한 6살쯤? 엄마가 무릎을 꿇고 딸을 꽉 껴안는데, 울컥했어"

"그래? 우리도 그거 많이 했는데. 꽉 안고 으~하면서 양쪽으로 흔드는 거.ㅎㅎ"

"어. 그거 생각나서 울컥했어."

"진짜? 너도 기억나는구나? 넌 멀리서 막 달려와서 팍 안기는 거도 좋아했잖아."

"맞아. 여행가면 그거 많이 했잖아."


아들이 어릴 적 추억을 기억해준 것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얼마전에는, 아직 안고 다닐 시절 저녁이 되면 씻기러 욕실로 가면서 외치던 "세수! 치카! 발!"(음율을 붙여서)을 기억해서 신기했다. 요즘도 너무 피곤하다 해서 샤워 못하고 자려고 할 때 "세수 치카 발은 하고 자야지!"하곤 한다. "엄마, 그거 애기때부터 노래로 하지 않았어? 그거 엄마가 개발한 거였어?"이러는 거다. "어. 엄마가 지은거지.ㅎㅎ 뒤에 하나 더 붙는데 기억나?"

"어. 똥꼬!잖아. 세수 치카 발 똥꼬!" 한참 같이 웃었다.

이런 소소한 시간들, 함께 했던 습관들, 작은 사랑의 표현들이 쌓여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12.3 내란사건 이후 곪은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듯이 겉으로 드러나버린 극우 보수의 진면목, 과잠을 입고 윤의 품에 안기는 20대 청년들이나 윤을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김변호사나 미국 국기를 흔들며 울부짖는 노인들이나 조선총독부 깨부수듯 서부지법을 깨부수는 청년들을 보며 우리들이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다.(이제 생각해보니, 12.3 이전에 그들을 보며 느낀 것은 경멸이었던 것 같다. 아. 반성한다.)

어디서든 소수였던,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는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극우의 단어와 행동들이 유튜브 생중계까지 동원해서 발화되었던 순간, 나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겁이 났다.


나같은 인간은 문제에 부딪히면 우선 책을 찾는다.(좋지 않은 습관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양식과 상식에 맡겨두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극우의 발흥 문제가 12.3 내란과 윤이라는 괴물을 만나자 확대재생산되는 것을 눈으로 보자, 우리의 미래가 어찌될지 걱정이 되었고,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 자해, 자살시도, 우울증, 공황장애, 부모와의 갈등, SNS를 통한 갈등과 학교폭력, 성관련 사안들-과 주르르 연결이 되며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아 책들을 구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읽은 것도, 군데군데 골라 읽은 것도, 강의까지 들어가며 읽은 것도 있다.

주로 원인이 무엇인지 파는 글들이 많았는데, 대책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잘 알기가 어려웠다. 나는 대책을 세워가는 사람이니까 프로이트까지 등장하는 인간의 심리분석으로는 그들의 생성기제를 이해는 했지만, 대체 뭘 하라는 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렇구나, 넌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고 이해하고 지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 불안세대나 나쁜 교육에는 현세대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가 매우 자세하게 나온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폰을 들고, SNS의 세계에 살며, 실제같은 게임과 벗하며 살아온 아이들. 저자는 SNS를 쓰지 않게 하고 바깥에서 모험놀이를 즐기게 해야 한다는(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이 시대에 그게 가능한가? 어른들은 그리 살면서 아이들에게는 제한을 두자는 제안은, 국가적 합의를 통해 교육기관에서 시행해야 하기도 하지만, 사실 실현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이미 IT강국의 루트를 타고 세계최초로 AI교과서까지 발행한 국가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교육청에서 AI교육과 생태전환교육을 동시에 추진과제로 내세웠을 때부터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내면에서 치밀어오르는 이 불합리성을 어찌할지 몰랐던 내게는, AI시대 아이에게 아날로그식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도 그에 못지 않는 불합리성을 띤다. AI를 돌리는데 소비되는 물과 전기를 생각했다면, 모든 학생에게 디벗을 나눠주며 '교육에만 쓰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생각했다면, 수립하지 못할 교육정책이었다.


티비나 유튜브에는 마치 세상이 민주당과 국힘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패널들이 꼭 양쪽으로 나온다. 그들이 원인인데 그들한테 현상과 대책에 대해 들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언론은 이런식으로 중립을 가장한다. 유튜브에 나오는 사람들도 늘 자신의 입장을 굳게 견지한 사람들이 많아서 건너편을 조롱하거나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 일상이다. 대부분은 음모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자기가 알고 있는 이론을 근거로 건너편이 틀렸고, 바보들이라 말한다. 나이든 유시민의 논리적인 면은 참고할만 하지만, 가끔 옛날의 유시민의 패기가 나오는 순간 밥맛 떨어진다. 약간 엇박으로 말을 시작하며 후드티를 입고 부드럽게 수구의 언어를 내뱉는 '보수'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하는 한동훈도 채널을 돌리고 싶게 만들곤 한다.

그러던 중 '소년의 시간'을 보았다. 여기저기서 추천들을 하길래 귀얇은 내가 안 볼 수가 있나.

자비 따위 없이 보여주는 학교의 모습과 13살 이쁘장한 남자애가 여성상담사를 대할 때 보이는 섬뜩한 마초적 모습에 진심으로 충격받았다. 아, 김현수 샘이 아도르노를 추천한 이유가 이건가? 우리가 마음 속으로 상정하고 있는 '~은 ~해야돼'라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진실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영화였다. 한편을 원테이크로 끊김없이 하나의 샷으로 찍는 영화적 기술로도 감탄해마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이 더욱 감명깊긴 했다. 이런 걸 해내는 영화인들이라니. 이런 사람들이 성장하는 사회라면 그래도 아직 괜찮은 곳이구나.


공부하자. 그래도 앞으로 10년 정도 교육계에서 먹고 살 내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로구나.

그 와중에 윤의 탄핵이 결정되었다. 선고날, 이쪽은 집회를 하지 말았으면 했다. 안국동 한쪽을 차지하고 건너편과 대치하듯이 집회를 하고, 선고가 나는 순간 내가 이겼다!하는 식으로 승리를 자축할 그림이 너무 슬펐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며 교육문제의 대부분은 10대 초반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 축적되온 것들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고, 그것을 다행히 고등학교 단계에서 발견하더라도 이미 늦은 경우가 많고, 또 대학진학이라는 멋지고도 슬픈 당면과제의 뒤편으로 가려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음을 안다. 미리 탈락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탈락시키거나 없는 듯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치장하거나 감추고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서 밥벌어 먹는 건 아니지 않나.


그 와중에 문형배 재판관과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가 알려졌다.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른들의 사회적 역할, 중년 이후 삶의 사회적 역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나, 사회적 선순환으로 인한 재교육이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는가 등에 대해 또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받는 평생의 교육에서 학교는 결정적인 순간을 담당하긴 하지만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고 보인다.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의 50% 안쪽으로만 좋은 영향을 줄 것이고, 그 외에는 별 영향이 없거나, 악영향을 주기도 할 것이다. 우리 큰아들만 해도 학교보다는 사회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간 거 같다. 사회교육으로서의 삶도 생각해볼만한 하다.


김현수 샘의 강의와 함께 진행하느라고 야콥 요한센과 스기타 슌스케의 책은 급하게 3주만에 읽었다.

그러느라 몸살이 나서 지난주 마지막 강의를 듣고는 몸져누웠다.

사실은 새로 발행된, 나의 정신적 멘토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책을 읽고 싶지만,

5월 초에는 아도르노의 책과 김진영 선생의 아도르노 강의를 읽고 모임이 있어서 속도를 내는 중이다.


글은 참 좋은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한다.

페북을 탈퇴한지 1년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글을 쓰고 내 사는 꼴이 보여서 한동안 우울하고 아팠다.

직면하자. 직면해야 내가 보인다. 두 책을 일단 정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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