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에게 한발 다가서기
뜻밖의 자료를 보게 되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자체 개발한 '중등 인문교양교육 교육지표'를이용하여 PISA 2022데이터(33개국+영역별 @국)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결과는 암울했다. 학습역량(수학, 과학, 국어)이 9위라는 높은 성적에 비해, 타자(인간, 비인간)과의 관계 중 친구관계가 36위, 협력능력 26위, 자아주체성 20위, 진로탐색 29위였다. (자료보기: https://www.kedi.re.kr/khome/main/research/selectKediBriefForm.do?selectTp=0&board_sq_no=41&article_sq_no=36001)
누구나 예측할만한 결과가 지표를 통한 통계자료로 정리되니 "거봐, 그럴줄 알았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앞서 '뜻밖의'라는 수식어를 단 이유가 있다. 타자와의 관계 중 교사항목이 다른 국가와의 비교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이 마치 교육에서 비롯된 듯 틈만 나면 두들겨맞고,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그 예방도 모두 학교가 하라는 듯 법령을 만들어대곤 하지만, 아이들이 믿을 수 있는 부모 아닌 어른이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통계에 등장하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업무가 많고, 학부모들에 의해 학원강사와 비교를 당하는 수모를 일상적으로 겪고 있지만, 그래도 교사가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 다양한 원인으로 학교를 중도에 떠나가는 아이들이 겪는 정신적 병증이나 자살 자해 충동 성향이 위험할 정도의 수준인 걸 생각하면, 아이들을 지키는 마지막 방파제가 학교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료보기: 학교밖 청소년의 정신건강실태조사 https://mhs.ncmh.go.kr/board.es?mid=a10301000000&bid=0005)
12.3 사태에서도 그간 이어졌던 민주주의 교육의 효과는 확인되었다. '이건 아닌데' 싶어서 명령을 거부하거나, 임무를 소홀히 하거나, 한밤 중 국회로 달려가거나, 추운 겨울 거리로 쏟아져나온 젊은이들은 다들 2000년대 김대중 정부 때 시작된 민주주의교육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나처럼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태극기 그리기 대회나 애국가 4절까지 쓰기로 상을 받는 세대는 아니란 말이다.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교육과정의 점차적 발전, 1989년 전교조의 창립 이후 이어졌던 교사들의 지속적 노력(목숨을 걸었었다), 학교 운영의 합리화 과정, 그리고 2010년대의 민주시민교육까지. 헌재 선고문에도 있었던 이러한 시민들의 형성과정은 민주화운동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달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교육으로만 움직여지던가. 자본주의 사회의 급격한(정말 너무 빠르다) 확장과 변화는 반대편에서 또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12.3사태 후 우리를 놀래킨 광화문의 소년들과 노년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중학교에서 일하는 친구가 수업시간에 탄핵선고 방송을 아이들이랑 같이 보았다. 대다수 아이들이 박수를 쳤지만, 한 녀석이 슬쩍 "이제 우리나라 망하면 어떡해요?" 하더란다. 그래서 웃으면서 "그래도 망하지는 않을거야! 너무 걱정마."했다고. 20년 넘은 역사교사의 짬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답답하고 화가 나겠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을 거다. 부모님으로부터 노상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고, 즐겨보는 유튜브가 그쪽 일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이 지난 정권에 의해 손해를 봤을 수도 있다. 문정부 시절 급등한 집값때문에 여태 빛이 잘 안드는 작은 집에 살 수도 있고(누구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누구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을 것이다. ) 아버지가 군인이라 늘 국가의 안정을 최우선이라 들었을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층적이다. '극우'라 불리는 사람조차도 그렇다.
12.3 이후 '극우 청소년' '일베'에 대한 두려움이 퍼졌다.
드러내놓고 유튜브를 통해 극단적 차별과 혐오 발언을 쏘아대고 심지어, 심지어는 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때려부수고 사람까지 공격하려 했던 테러리스트, 폭도들의 모습을 보고 누구나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백주대낮에 빛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인간의 상식과 양식을 믿고 살아가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이성적 설득 또는 상식을 기반으로 한 사회 운영이라면 저런 모습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믿는 구석이 뭔지는 몰라도 있었다.
교사들은 이제 교실에서 맘놓고 극우적인 혐오 차별발화를 내뱉는 아이들을 만날까봐 두려워했다. 그런 아이들을 만나면 내가 가르치는 내용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그들을 논파 또는 교화할지 고민이 깊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공간과 단체에서 극우들의 발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어떻게 앞으로 교육해야 하는지 우후죽순으로 심포지엄, 컨퍼런스, 학회발표들이 있었다. 어떤 행사는 기존의 연구성과와 논리를 반복했고, 어떤 행사는 그들의 문제점만 잔뜩 늘어놓는 수준이었다.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들을 부여잡고 다들 답답하니까 저러려니 했지만, 다들 설익어 보여서 보기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나를 포함한 진보이며 민주적입네 하는 무리-들이 소위 '극우'라 이름붙여진 아이들을 타자화, 대상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정신 세계를 이론을 들이대며 분석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논파하고, 이들의 의식을 계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였다. '우리'가 '극우'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때 그들이 너무 쉽게 혐오와 차별을 발화하고 실천한다고 했는데, 12.3 이후, 그리고 탄핵 이후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들을 경멸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개조해야할 비인간으로 폄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였다. (아. 이 생각을 하고 너무 몸서리치게 내가 무서웠다)
'자유대학' 부대표인 연세대 과잠을 입은 그 학생이 실은 문정부 시기 최대의 전성기를 보낸 해직기자 출신 아버지를 두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래전부터 아버지와 다른 정치성향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선택하게 형성된 것일까? 아들 키우기의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아이와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었다. 조너선 화이트의 책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성향의 학자가 쓴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깨달았고(책을 읽으며 열번 넘게 집어던졌다), 아마도 진짜 극우 청년을 만난다면 머리로 피가 쏠려 부글부글 끓다가 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만남조차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더 깨닫고 있다. "우리의 머리 위로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서라면".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54894.html
'우리'가 늘 말했듯이, 가까이에 함께 지내는 경험만이 상대를 악마화시키지 않고,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극우적 정치성향을 지녔지만, 일상에서는 매우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극우가 왜 나쁜 것인지를 '알려주려면' 일단 그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 역시 다층성을 띤 인간이다. 그를 납작하게 규정하는 것 자체가 극우적인 성향이고, 정치적 갈등을 불러일으켜 권력을 얻으려는 포퓰리즘의 시작이다. 진보진영은 '극우' 소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일단 책으로 스스로의 머리속을 정리 좀 하고. 서서히 만남을 시작해볼 시기가 다가올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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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성향, 청소년의 행복, SNS, 신자유주의(능력주의)_한국의 민주세력(486)은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의 열매를 잔뜩 따먹었다. 신자유주의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패자에게 안기고, 이는 자학으로 이어지고, 살려면 방탄복을 찾아야만 한다. 조국의 정치적 부활, 수치심은 포퓰리즘과 연결되기 쉽다.
섹슈얼리티의 좌절, 외모와 보여주기 지상주의, 인스타그램, 버닝썬과 딥페이크, 억제와 탈억제. 인셀의 탄생, 유튜브라는 새로운 유니버스. 방탄복과 액체화된 자아
진보진영의 '극우' 소비하기, 극우의 탄생에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연루되어 있지만, 이를 생각하지 않고 타자화, 대상화하여 계도와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다. 과잠입은 연세대학생과 애국소녀. 애정과 관심, 나의 아이. 노년의 시간(엄마의 윤석열 걱정)도 돌아봐야 한다. 소년에 대한 상이 잡히면 우리 엄마같은 착한 노년이 왜 윤석렬 걱정으로 잠을 못이루게 되었는지도 돌아보련다.
.... 언어로 정리해보자.....(투비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