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을 견디는 용기

우치다 다츠루, <무지의 즐거움> 밑줄긋기

1. 판에 박은 일상

일하는 원칙이라면 이처럼 판에 박은 듯한 루틴을 지키는 것입니다. 흥에 겨워서 밤을 새워 글 쓰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시작하는 시간도 끝나는 시간도 정해져 있습니다. ...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려면 그 이외의 일은 가능한 한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편이 좋으니까요. ... (칸트의 산책시간에 맞춰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를 언급하면서) 이는 칸트가 그만큼 정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조건을 완전히 똑같이 한 경우에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감지하고자 궁리한 결과였을 겁니다.


2. 스승의 범위

멘토라는 존재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저는 멘토의 범위를 좀 더 넓게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의 스승'도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도 포함하는 거죠.

... (멘토나 스승에게서) 대답을 얻었다고 해서 그 대답에 붙들릴 필요도 없고요, 대답을 듣고 이 대답은 왠지 틀린 것 같다 싶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반대로 '아 그렇구나, 그런 생각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뇌 어딘가에 저장해두면 되고요.


3. 제자와 조술사

'불순물'이 모두 제거된 '나만의 독창적인 사상과 언어'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것에는 나의 독창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여럿 붙어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온전한 나의 것'이고 어느 것이 '빌려온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내 말의 꽤 많은 부분이 '누군가가 지금까지 생각하거나 말한 것'을 빌려와서 사용하는 것이라도 생각해주세요." 저는 아예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이렇게 해야 자유롭게 이것저것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실리적인 사람이라서 '독창적인 것'에 구애받기보다 '조술자'로 밀고 나갈 때 독창적일 기회가 더 있다고 하면 조술자로 밀고 나가는 편을 택할 겁니다. 스승의 따르고 배운다는 것은 이 조술자의 위치에 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적어도 '나는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고 있다'라는 것보다 자신의 지적 성장과 자신이 속한 집단 전체의 지적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지적성장이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가에 관한 앎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제가 몰랐던 것을 가르쳐주면 저는 기꺼이 그의 손을 맞잡을 겁니다. 그럼 '우리의 앎의 경계'가 미개척지를 향해 확장될 테니까요. 우리가 집단을 이루어 그것을 통합한 것이 '우리의 지적 자산'이 됩니다. 우리는 그런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고 해 나가야 합니다. '자기 나름의 배움의 길'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편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런 '독창성에 대한 집착'이 퍼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리지널리티', 즉 자기 나름의 길이건 독창성이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지널리티란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그 사람 정말 독창적이었어"라는 말을 들을 때쯤 비로소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지적 폐활량

읽는 힘이란 '공중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결정짓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능력, pending)을 의미합니다. 이는 일의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는 개념을 포함하는 논고를 계속 읽을 수 있는 힘을 뜻하고, 지적 폐활량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면서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공감베이스'만 강조하면,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가치하게 보는 오만함을 의미합니다.


5. 지적 흥분과 지성의 작동

개성 있는 저의 관점이라는 게 과연 뭘까요?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제가 집단의 퍼포먼스를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늘 고민한다는 점이 아니띾 싶습니다. 저는 '지성'이란 집단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잡단 안에서 활발한 대화가 오가고 이론이 난무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지성의 작동'이고, 이런 일은 개인 혼자서는 좀처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지성인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의 지성이 활성화되고, 그 덕에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상태'가 생기는지 아닌지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단의 지적 퍼포먼스를 향상해 나가는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머리가 굉장히 좋고 달변이지만 그 사람이 나타나면 그 바람에 주변이 조용해지고 오가던 사고가 정지되고, 그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면 그 사람은 지성인이 아니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 저는 독자를 향해 올곧게 "읽어주세요. 부탁입니다."하고 간청합니다. 제 글을 읽고 지적으로 흥분하는 독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들과 협력해서 집단의 지적 퍼포먼스를 향상해 문화적으로 풍부한 사회를 만들고, 모두가 지혜를 내어 인류가 맞닥뜨리는 다양한 곤란과 불행을 극복해서 집단으로서 살아남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6. 무도와 수행

제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상대방을 메친다거나 판을 끝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신체 기술이 아닙니다. 목적지입니다. 어디를 향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다입니다. 사제 관계는 제가 제자들보다 강하거나 빠르거나 기술이 뛰어나서 성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우열을 유일한 잣대로 사제관계를 구축하면 무의식중에 제자의 성장을 방해하는 교수법을 취하게 됩니다.


7. 진정한 자아와 아이덴티티 (113쪽. 교육에 대한 생각)

아이들의 성숙을 지원하는 교육은 그들이 복잡해져 가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히 '자기다움'이라는 것에 매달리면 안됩니다.

... 아이들이 인생의 이른 시기에 '진정한 자아' '아이덴티티' 같은 것을 확립하는 게 정말 좋은 일일까요?

개성, 자기다움, 캐릭터는 어니까지나 편의적이고 잠정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 없이는 자기가 있을 곳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습니다. 틀과 캐릭터는 아이들의 자기방어를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안에 계속 틀어박혀 있는 한 그 이상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틀을 벗어버리는 순간 아이들은 무방비상태가 됩니다. 그것이 무서워서 아이들은 계속 틀 안에 머물려고 합니다.

교사의 역할은 바로 이때, 성장하고자 오래된 껍질을 벗어던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상처받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상태'의 아이들에게 "네가 결코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나는 네 성장을 축복한다"라고 말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랑시에르, 비에스타의 내용을 담고 있어 놀람. 원서 주문함. 색깔은 내 생각)


8.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배운다'는 것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배운다'는 식의 화법에 위화감을 느낍니다. 배움이 정말 일어나면 '나'라는 주어는 더이상 동일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배움은 '수행'입니다.


9. 연구자의 발언

저는 자본주의의 폭주를 엊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코뮌의 재생입니다. 공동체에 속하는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공유지를 다시 한번 소생시키는 일, 사유를 억제하고 가능한 한 많은 자원을 공동체가 공유하고 공동관리하는 것, 그런 풍습을 사회에 확장해 가는 것, 그것이 저의 정치적 목표입니다.

사회적 실천도 그렇습니다. 일단은 가까운 사람, 얼굴을 아는 사람 가운데 곤란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지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가까움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갑니다. '모든 부정을 바로 잡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거기까지는 개인의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내 힘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부정을 바로잡고,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가면 됩니다.

사회정의는 단숨에 실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걸음씩, 한장씩 실현해 나가면 됩니다. 저는 그 일을 제 말과 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마치바의 의미(187쪽)

독자의 주체적인 관여를 겨냥해서 책을 씁니다. 독자의 지성을 신뢰하며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지성을 신뢰하며 가르쳐야 한다.로 연관시켜도 될 듯. )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어른 대접을 하자.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바란다면 이미 지적으로 충분히 성숙한 인간으로 그들을 대하자.' 아이들은 자신을 향한 존경의 뜻을 결코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교사들이 아이들을 비하하는 태도를 기본장착하고 있다. 이는 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경의를 표하는 것은 애정이나 신뢰보다 훨씬 전달력이 강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발신자의 의도롤 올곧게 수신해 주는 것은 경의입니다. (논문들을 읽을 때 이게 없다는 게 너무 많이 느껴진다. '주지하다시피'... 뭘 주지해? 이해 못하면 독자의 탓이라는 거지.)


11. 민주주의와 시민(200쪽)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손을 뗀 사람들은 더는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져다주거나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손수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 저는 민주주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아직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ㅓㅅ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란 '그것을 이 세계에 실현하려는 '수행적 노력'이라는 형태로, 항상 미완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이상을 추구하려는 노력이란 원래 이런 겁니다. 죽을 때까지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혹 그 목표를 추구하다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불만이 없습니다.

... 어떤 개념을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은 그것이 현실화될 개연성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메시아가 영원히 오지 않더라도 메시아니즘은 지금 여기서 작동합니다. 완전하고 전능한 민주주의가 영원히 도래하지 않더라도 그 개념이 지금 여기의 정치를 바르게 인식하는 힘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 주권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자기 개인의 운명과 나라의 운명 사이에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즉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과 나라를 바꾸는 것은 하나라고 믿을 수 수있는 것, 이것이 주권자의 조건입니다. 일종의 관계망상입니다. 여기서 개인의 공공성이 발현됩니다.

제가 어떤 것의 옳고 그름을 공적 기관이 판단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국민의 적절한 판단력 함양에 도움이 되는 바가 없기 때문이고, 국민의 시민적 성숙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미성년자를 위해 어른이 결정을 대신한다'는 구조입니다. (이래서, 역사교육의 방향을 공기관이 정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 그런 사회에서는 아이가 어른이 되는 동기부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판단하세요"라고 권한을 통째로 주지 않는 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력을 키우려하지 않습니다.(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 "당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라고 맡기지 않는 한, 사람은 주권자로서의 자기형성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민주제는 이렇게 일종의 '모험을 건네는 행위'입니다. 지금 일본과 한국에서 민주제가 쇠퇴하는 것은 그 모험을 감행할 각오를 하는 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나친 공적부조 사회, 복지국가, 법화사회, 정부기능의 비대화가 그래서 나는 두렵다)


12. 무도적 사고

학술적 지성은 자신의 오규를 가능한 한 빨리 자각하고 그것을 보완할 때가 아니면 진보할 기회가 딱히 없습니다. 논파하는 사람은 그런 기회를 스스로 짓밟는 것이지요. 무도 수행은 학술에서 가설의 고쳐쓰기와 구조적으로 똑같습니다. 연속적인 자기쇄신입니다. 어제까지와는 다른 자신이 되는 것, 어제까지와는 다른 몸과 마음을 쓰는 것이 수행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지,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와 같은 간사함을 버리고 '무심'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곧바로 대처하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움직여야 합니다.


13. 직감을 따르는 용기(235)

사람은 왠지 어떤 삶을 살아야 자시의 사는 힘과 지혜가 가장 높아지는지 압니다. 자신의 마음과 직감에 따르려면 용기가 피요합니다. 용기란 고립을 견디는 데 필요한 자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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