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즐거움,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암진단을 받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겠어!"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바로 병가를 신청했다. 2주밖에 남지 않은 1학기를 뒤로 하고 그렇게 병가를 내고, 2학기 교장발령을 미루기 위해 즉시 병휴직을 신청했다. 교장발령을 받고 병가를 더 쓰고 연가까지 싹 쓰고 휴직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겪게된 각종 행정절차의 번거로움을 방지하고, 나도 마음 편히 쭉 쉬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맞이한 여유. 통증은 아직 미세한 정도, 잘 먹고 잘 운동하고 잘 쉬는 게 목표가 되었지만 하루 일정을 분단위로 짜두고 사는 내겐 너무 낯선 시간들이었다. 저녁마다 신장암과 각종 암, 건강 관련 의사들의 유튜브를 통해 각종 지식을 쌓아가느라 머리 속이 알차지는 느낌이었지만,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불안한 증상이 도졌다. 두달 전 대선 즈음(아직 진단을 받기 전에) 해서 내 머리속에 있던 주제는 연금개혁, 교육에서의 학생중심이라는 환상, AI를 교육에 어떤 수준과 형태로 받아들여야 하나 등이었다. 교장 발령을 앞두고 나에게 도움을 줄 사람들 (정신건강전문의, 학생통합맞춤지원 전문 지역사회전문가, AI 관련 LG 연구원, 회복적 생활교육 전문가, 민주시민교육 및 아시아지역 전문가, 평화교육 전문가, 건강교육 전문가 등)에게 몇년 만에 전화를 걸어 '김선옥 좋은 교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한 자문위원회 구성까지 마친 상태였다. 혐오와 차별금지를 위한 조언을 해줄 사람으로 누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나도 참 대단한 인간이다. 이런 걱정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다니). 책도 좀 사서 쌓아두고 한권씩 마스터하고 있는 중이었다.
놀랍기도 하지. 내 한몸 돌보는 게 나의 가장 큰 목표가 되자 다른 것은 모두 후순위로 즉시 밀려났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사람이 7시간 이상을 잘 수 있는가(5시간 30분이 내 몸의 프로그래밍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운동은 무엇이 좋은가(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 제일 좋다), 밥은 어떻게 먹어야 하나(진짜 음식을 간단히 조리해서 맛있게 먹는 것이 정답), 살아갈 때 마음은 어떻게 지녀야 하나 이런 쪽으로 방향이 휙 틀어졌고, 결국 사둔 책들은 책꽂이로 고스란히 꽂혔다. 온갖 지식과 정답을 가진 학자들의 책은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고, 친절한 의사들은 책을 쓰면 유튜브에 그 내용을 죄다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 우치다 센세!
우치다 다쓰루는 배움의 공동체의 사토 마나부를 만났을 때 즈음 알게 된 분이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 등등 당시 붐이 일었던 교육론의 중심에 있는 분이었다. 배움의 공동체를 3년 정도 힘써 실천하고 그 성과를 만끽했던 내게는 좋은 지침을 주신 분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존재 자체를 잊고 있다가 작년에 다시 만났다. 기후 위기 담론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올 때, 그것의 효용성과 진실성을 의심하며 냉소적인 태도로 살고 있던 내게 우치다 센세의 <한걸음 뒤의 세상-'후퇴'에서 찾은 생존>은 위로 같은 것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맞닦뜨린 변화들에 '무엇을 해야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었다. 이 책 이후로 아직 읽지 않은 센세의 책을 사들였다. 삶에 기반하고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를 여전히 정력적으로 뿜어내는 센세의 글은 나이가 들어 깊이가 더해져있었다. 일본어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센세를 만나고 싶다! 고까지 생각했다. (30대때, 교육의 지침으로 삼았던 조너선 코졸을 만나려고 한동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완벽하지 않을 용기>는 완벽하지 않아야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음을, <곤란한 결혼>은 함께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는 사고의 양면성을 내 머리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치다 센세는 누군가가 해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은 전도자일 뿐이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다가 "어이, 우치다, 그건 좀 무리아니야?"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아. 이번에 읽은 책을 요약하려고 글을 시작했는데, 우리 우치다 센세 이야기로 흘렀다. 그럼 조금 더 이야기하고 이 글은 마쳐야겠다. 고등학교 중퇴자, 68세대, 70년대 벤처 번역가, 38세 애딸린 이혼남, 고베여학원 교수, 합기도 사범, 노가쿠 수행자, 학술적이지 않은 글을 끊임없이 써대는 작가, 얼마전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하루하루 전날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늘어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이상한 노인, '달성'보다는 '수행'에 방점을 두는 '연구자''교수' 아닌 '전도자'.
가방끈이 짧아 논문이란 걸 써보지는 못했어도, 많은 연구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책과 논문으로부터 지성을 채워오던 나. 애정하는 연구자들을 10년 이상 지켜보다보니, 문득 회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자신만의 연구영역과 관점을 달성한 사람들이 50대를 넘어가자 후학들의 도전을 깔아뭉개면서까지 자신의 낡은 관점을 고수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리와 명성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이렇게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50대 이상이 해야 할 일은, 주둥이는 닫고 지갑은 열며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젊은이들이 외롭거나 길을 헤맬 때 작은 목소리로 위로와 지지와 도움을 말해주면 되는데.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드는지.
여튼, 이번에 세 책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출간된 교육서적 하나를 알게 되어 주문했다. 센세의 맛깔스러운 일본어를 제자를 자처하는 박동섭씨가 잘 번역해주고 있지만, 웬지 이 책은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서다. 요약을 보내 레비나스와 비에스타, 랑시에르와 결이 비슷한 교육론인 거 같다.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하면, 이정도는 읽게 되지 않을까? ㅎㅎ라는 과욕을 부려본다. 브런치 북 하나 만들어서 책 소개를 해봐야겠다.
브런치북의 제목은 "우치다 센세, 무리 아니야?" (内田先生、無理じない?)
제목은 한글과 영어만 된다고 해서 한글로만 해야겠다.
좋은 노래를 알게 되었다.
https://youtu.be/nCYF4Ya-WcI?si=o5OOVJuCI0mIkC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