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구좌에서

종달 하도 세화 평대를 달리고 걷고 읽고

차례대로 한명씩 떠나고 나 혼자 남았다. 당근으로 유명한 구좌읍 하도리 앞바다에는 토끼섬이 있었다. 종달리에 저렴한 방을 잡고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너무 오랜만의 혼자 여행. 종달리-하도리-세화리-평대리 달리고, 걷고, 읽고.


친구들과 북적이던 5박6일을 뒤로 하고 혼자 남은 종달리. 값비싼 펜션과 원피스 입고 사진찍을 감성숙소들만 많아 방값이 비쌌다. 아고다에 있는 방들 중 5만원 이하로 고르다보니, 주변에 편의점 하나 없는 외딴 바닷가 언덕. 건물에 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고요한 낡은 숙소. 김과 윤과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전지훈련하듯 캐리어를 끌고 걸어 도착한 서귀포버스 터미널에서 201번을 탔다. 동일주도로를 따라109개 정류장을 지나 내려 택시를 타고 또 들어가야 하는 곳. 비는 점차 심해졌고, 그래도 번화한 성산에 내려 택시를 잡고 물을 가르며 도착했다. 뒤로는 오름과 밭이,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진 멋진 곳이었다. 밤새 세찬 비가 내렸다.

몇년 만의 혼자 달리기. 3킬로 뛰기가 목표였다. 왼편엔 바다, 오른편은 철새도래지

두차례의 러닝훈련으로 살살 달리기 욕구가 상승하고 있던 터라 아침에 비가 그친 걸 보고 요거트 한그릇 하고 뛸 준비를 하고 나왔다. 웜업은 완벽하게 했지만 속도와 케이던스 조절엔 실패. 하지만 대충 1킬로를 한번에 뛰고 조금 걷고 했던 거 같다. 달리기는 역시 기분이 좋다. 빨리 끝나는 고강도 운동이고. 지미봉, 바다, 철새도래지가 어우러진 호젓한 풍경이 좋았다. 방에 들어와 쿨다운 스트레칭까지, 충실한 제자로 첫일정을 마쳤다.

해맞이로를 따라 불턱(해녀들이 불을 피워 추위를 달래던 자리)가 많았다.

식당도 없고 편의점도 없고 사람도 없는 곳이라 아침을 어디서 먹을까 하다가 10시에 문여는 꼬스뗀뇨라는 카페에 왔다. 이 카페 덕에 열악한 숙소가 용서됐다. 바다를 바라보는 갤러리풍의 카페는 그 자체가 예술적이었다. 음악도 좋았고 커피와 식기도 딱 내 취향. 제주 올 때 들고온 우치다 센세의 '무지의 즐거움'을 읽기 시작했다. 작년에 우치다 다츠루의 최근 책들을 접하고는 홀리듯 빠져들어 최근까지 위로를 받고 있는데, 이 책은 내가 왜 그분을 따르게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카페 꼬스뗀뇨

"어떤 사람이 지성인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의 지성이 활성화되고, 그 덕에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상태'가 생기는지 아닌지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가진 지식과 정보량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두뇌 회전이 빠른지가 기준이 아니라는 거죠. 집단의 지적 퍼포먼스를 향상해 나가는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의 새 별명이 된 '지의류'

두 시간의 여유를 즐기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 종달포구까지 걸으며 바다를 실컷 보았으나, 목표했던 식당 두 곳이 모두 휴무일. 비도 뿌리는데 배는 고프고. 버스 정류장에 차가 대기하고 있어 물어보니 평대리까지 가는 버스. 오래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톰톰카레에 갈 기회라 생각하고 무작정 올라 단독 승객으로 평대리 계룡동까지 갔다. 평대리는 해안가 마을인데, 돌담과 개조한 전통집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사진 잘 나올 카페들이 많았다. 톰톰카레 전에 잠시 문어솥밥에 흔들렸으나 대기가 2시간이라는 말에 톰톰으로.

채식식당 톰톰카레는 젊고 친절한 여주인 혼자 요리, 안내, 서빙, 식탁정리, 대기 관리를 다 하고 계셔서 안타까웠으나, 맛있어서 금방 잊었다. 콩카레는 지금은 사라진 내가 좋아하던 카페 사과나무의 dhal 달을 기억나게 하는 맛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평대 바닷가를 슬슬 걸어 구좌당근을 통째 갈아주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톰톰카레, 돌담 너머 당근, 숙소 귀환전 꼬스뗀뇨의 우도땅콩슬러시
오래된 불턱과 용천수 목욕탕, 밤배의 귀환을 기다리면거 불밝히던 곳, 해신당 등 민속유적이 믾았다.
바다가 이런 색이었지! 일주일만에 본 제주 바다 색깔

밥 먹으면 적어도 1.5킬로는 넘게 걷도록 세팅된 제주 루틴에 따라 해안을 걷다가 버스 타러갈 길을 놓쳐 그냥 걸었다. 평대해안과 세화해안은 딱 놀기 좋은 한산한 동네해변이었다. 색달 해수욕장 같은 바글바글과는 다른, 러그 하나 들고 와 책읽고 수영하고 잠자다 가면 좋을 곳.

지나친 걷기로 지쳐 세화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꼬스뗀뇨로 와 우도땅콩슬러시를 맛나게 먹고 숙소로 왔다.

숙소에서 본 해질녘, 굳이 새벽5시에 일어나 보러 나간 아침풍경
제주여행의 마지막은 새벽 바다 풍경

"진심으로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하려고 하면 주변에 반대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마음과 직감은 그걸 압니다. 그냥 거기 따르면 됩니다. 사람은 왠지 어떤 삶을 살아야 자신의 사는 힘과 지혜가 가장 높아지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직감을 따르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란 고립을 견디는 데 필요한 자질입니다."

- 우치다 다츠루, 무지의 즐거움 중에서

어제밤 정성들여 수술전까지의 일상 루틴 계획을 짰다. 하루하루 잘 살아야겠다.

시간이 많은데 숙소에서 할 일도 없고. 택시 타면 만원 들여 세화리 환승정류장에 15분만에 올 수 있지만, 굳이굳이 캐리어 끌고 배낭 메고 30분 해안을 걷고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201번을 타고 세화환승정류장에 왔다.

아침에 찾아보니 9시에 문여는 코코아 카페(특이하다 싶었다)가 있어 그걸로 아침식사를 하고자 출발. 와서 카페를 가니 문이 닫혀있어 에잉? 이러는데 맞은 편에 정말 내 맘에 쏙드는 외관의 새 카페가 만들어져있었다. cocohaa. 확장했는갑다 하고 들어서니! 들어서니! 주인 부부의 꿈과 노력과 제주에 대한 애정이 결정을 맺은 곳이었다. 8월8일에 개장했다는 곳. 아직 카카오맵에도 없는 곳.


여행의 마지막이 화려하고도 행복하게 장식되었다.

옛가게 바로 앞. 제주풀무질에서 10미터 옆으로.


[카카오맵] 코코하 kokohaa by 카카오패밀리 초콜릿 전문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구좌로 60 1층 (구좌읍 세화리)

https://kko.kakao.com/0Ki6SdUHEW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