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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다양한 채소를 먹자

그치만 채소 손질이 제일 싫어!

9월이 되어버렸다. 29일엔 입원, 30일엔 수술이다.

전신마취로 수술 전후 준비와 정리까지 해서 3시간 정도라고 한다. 8월 29일엔 12시30분쯤 병원에 도착해 채혈부터 시작해서(우와 무려 8통을 뺐다) 흉부촬영, 폐검사, 심장초음파, 신장스캔, 신장CT를 오후 내내 차례대로 진행했다.

집에 오는 길에 아주 맛있는 걸 먹겠다고 성북동 돈가스집에 가서 주문했다가 반도 못먹고 돌아왔다. 그래도 굳이 치팅을 해야겠다며 토요일엔 아들과 치킨을 먹고(난 맹세코 닭봉, 날개 각 2개씩만 먹었다.), 그 다음날은 티라미수케익 한조각을 아들과 나눠먹었다.


그리고 이제 진짜 9월. 지난 병가기간 2달을 서울을 누비고 돌아다녔더니, 그것도 이제 싫증이 나서 수술 준비를 위한 체력비축을 제일 과제로 삼기로 했다. 운동을 하루에 2가지 하고(밝을 때 하나, 어두울 때 하나) 낮에 집에서 좀 쉬고, 일본어 문형공부 책을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어반스케치 클래스에 충실하고 연습도 열심히 할 것을 계획했다.


마침 한달간 먹던 채소들이 떨어져 새로 주문했다. 오랜만에 다시마쌈을 먹고 싶어서 미역줄기랑 같이 주문했다. 한달에 한번 하는 채소 손질의 날. 토, 일 이틀 양일간 각각 2시간 넘게 손질했다. 채소를 먹는 일은 너무 중요하지만, 그렇다 해도 채소 손질은 너무 힘들다. 씻고 껍짓을 벗기고 채를 썰거나 잘라놓고, 조금이라도 냉장고에서 잘 버틸 수 있도록 보관용기에 잘 담고 냉장고 안에서 자리를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마와 미역줄기는 물에 담가 염분을 빼주는 게 또 큰 일이다. 괜히 샀다.ㅜㅜ 음식물 쓰레기가 제일 많이 나올 때도 바로 채소 손질할 때다. 아. 진짜 귀찮다.


채소 손질의 번거로움을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외식할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채소 반찬 많은 곳으로 간다. 얼마전 신부님과 희숙이와 함께 간 우이동 대보명가. 감사한 밥상이다.
채소두부전. 다양한 채소가 들어온 김에 한번 해봤다. 다시 하지는 않을 거다.

채소는 손질하는 게 가장 높은 장벽이다. 일단 해놓으면 그 다음날부터는 행복한 밥상을 향유한다.

인스타에서 보고 시도해본 에그인헬. 올리브유에 마늘편을 볶다가 토마토랑 양파 넣고 보글보글. 후주, 소금, 바질로 간하고 마지막에 달걀 두개 넣고 끓여 빵에 얹어 먹었다.

오랜만에 왓챠 한달 결제를 질러서 뭘 보지 ..하다가 우연히 찾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는 드라마에 꽂혔다.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억압하며 살던 외로운 4명이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후지이 카제의 <하나>가 이 드라마의 주제가였을 줄이야. 여튼 내가 좋아하는 류의 드라마였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공통점과 위로를 발견하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마츠시타 코헤이와 정말 예쁜 이마다 미오가 연기까지 잘해서 좋았다. 다카하시 잇세이의 <콰르텟>을 최애드라마로 생각하는데, 그 계보에 있는 작품이랄까.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그러나 왓챠는 딱 한달만이다. 숙면에도 방해되고, 자꾸 뭔가를 보게 되서 근육통증을 유발한다. 좋은 것 몇개만 더 봐야지.

아침은 채소와 단백질 중심의 무탄수화물 식사, 점심은 잡곡밥을 든든히 먹고, 저녁은 요거트에 과일과 견과류를 넣어 먹는 걸로 루틴을 정했다.

채소 손질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으면, 밥차리는 건 쉽다. 얼려놓은 연어조각이나 크래미, 열개쯤 한꺼번에 삶아놓은 달걀에 잡곡밥을 곁들이면 된다. 주말에 가족들 먹이려고 반찬을 좀 하지만, 괜히 남겨서 나만 많이 먹게 되니 그것도 좀 자제해야겠다.

오랜만에 만들어본 무수분 토마토카레, 키토김밥, 또 에그인헬

가끔 특별한 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어제는 영주샘이 보내준 맛있는 무조미 곱창김에 당근채 볶음, 달걀채, 크래미, 현미밥을 넣어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토마토를 새로 사서 오랜만에 무수분 토마토카레도 만들었다. 전기밥통에 토마토 3, 양파3, 당근 1, 통마늘 2통, 소고기, 바질을 넣고 만능찜 코스 60분 돌리니 너무 맛있게 됐다. 오이장아찌를 곁들였더니 부러울 게 없었다. 에그인헬을 다시 만들었는데 이번엔 새송이버섯을 더 넣어봤다. 욕심껏 흰 식빵을 두개나 구웠다가, 하나는 고스란히 버렸다.

<카모메 식당> <메가네> <펜션 메차>등을 만든 팀이 만들었다는 <코트다쥐르 넘버 10>이라는 시리즈물이 있어 보기 시작했다. 역시역시. 그 감성이 있다. 내가 일본을 좋아하게 만들어버렸던 그 감성.


어반스케치 첫시간에 다녀왔다. 그냥 그림 하나를 스케치하는 것 정도였다. 한문서예는 취소했다. 아무래도 주중 이틀이나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물감 등 준비물이 많아서 창고 서랍을 뒤져봤더니, 세상에 우리집에 수채화물감이 4 세트나 있었다. 아들들이 학원다닐 때 쓰던 거랑 내가 호치민에서 독학해보겠다고 샀던 진짜 고급 물감. 필요하다는 색깔만 골라내고 없는 것은 주문하고, 팔레트를 닦아내는데 거의 두 시간을 쓴 거 같다. 서랍 속을 보니 고체물감도 무려 2세트가 있었다. 항상 사놓고 한두번 해보고 포기하길 수차례. 이번에는 느려도 계속 가보자.


그림과 악기연주는 50평생 배워본 적도 해본적도 없는 나의 오래된 로망이다. 어릴 땐 집안이 어려워 못배웠고, 커서는 일하고 애 키우느라 전혀 여유가 없었다. 기회가 있었더라도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그 시간을 못내거나, 아니면 미숙한 내가 견딜 수 없어서 포기하기만 했었다. 선물같은 이 시간에 다시 시도해본다. 피아노는 내년에 시작할 작정이다.


50살이 넘어 새로 시작한 것들, 배운 것들이 몇 개인가 자꾸 세어본다.

일본어는 이제 1년 반 정도 되었다. 말은 잘 못하지만, 그래도 일본어 자체가 너무 맘에 들어서 꾸준히 하는 중이다. 어제는 12월 JLPT N2시험 신청을 했다.

필라테스는 작년 4월에 시작해서 1년 4개월 정도 하는 중이다. 몸이 아파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는데, 건강과 자신감을 동시에 준 거 같다. 덕분에 몸으로 하는 걸 배우는 것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작년 여름엔 스킨스쿠버 초급 자격증을 땄다.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장비 등등이 너무 번거로워서 이번 가을에는 더 자유로운 프리다이빙을 배워볼까 싶다. 2미터 이상 바다 속으로 내려갈 일은 없을 거 같으니, 스노클링과 얕은 잠수만 할 줄 알면 바다를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사실 필라테스로 복근을 키워 서핑을 배우는 것이 꿈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말리는 바람에 잠시 의기소침해졌다. 내년 여름엔 연수로 다시 한번 시도해볼 수 있을까?

꿈만 꾸던 어반스케치도 이번에 시작해서 천천히 배워봐야지.

피아노는 내년에 휴직을 연장하면 바로 시작하고, 발령을 받는다면 레슨 시간을 빼보아야 겠다.

또 하나 남은 것은 플라멩코. 더 늦으면 안될텐데. ㅎㅎ


사회적인 나에서 개인적인 나로. 동심원의 크기를 줄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것도 의외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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