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친절의 순간

따뜻한 수술대에 위안 받은 그날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든 사람이 너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 중


암종 절제를 위한 입원 3박4일,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요양병원 8박9일을 지나고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총11박12일의 긴 여정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집에 미리 도착해있었다. 수술을 받으면서 신체의 원리와 대단한 질서에 놀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인체해부학 책과 함께 주문했던 것.


머리말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치고 처음 본 문장에 눈물이 났다. 암이란 것을 알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마음이 안심되기는 처음이었다. 한참 울고 싶었지만, 워낙 눈물이 박한 사람이라 흐르기도 전에 그쳐서 아쉬웠다.


입원 일지를 길게 기록해두었지만 개인적 기록으로만 남기기로.

휘몰아쳤던 3박4일 동안 아직도 생생한 것은 몇 순간뿐이다. 꼭 기록해두고 싶었던 순간들.


차갑고 깨끗하고 낯선 곳, 그 속에서의 안심


수술날 새벽에 침대에 실려 차가운 복도를 가로질러 들어갔던 수술실. 각 과 수술실 문들을 지나 옮겨진 수술실은 영화에서 보던 그 모습이었다. 깨끗하고 차갑고 반짝였다. 침대에서 수술대로 옮겨지는 순간이 어떨까 생각했는데, 너무 의외로 수술대가 따뜻했다. 그때 마음에 퍼지던 안심, 안도감. 긴장과 두려움이 그 끈을 늦추었다. 곧 호흡기가 끼워지고 마취가 시행되고 정신을 잃었다.


그로부터 3시간쯤 후, 눈을 떴다. 사각거리는 차가운 시트, 요의를 참느라 애쓰면서, 그리고 극심한 통증이 밀려와 몸이 오그라들었다. 내가 마취에서 깨어난 것을 알아챈 간호사가 내 침상으로 옮겨왔고, 깊게 숨을 내쉬라고 주문했지만, 너무 춥고 아파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곧이어 진통제 링거가 연결되고 잠시 대기한 후 병실로 옮겨왔다.


침대에서 진통제를 맞고 있었지만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왼쪽 팔에 링거가 연결되어 있으니 오른쪽에 남편이 와서 손을 잡아주었다. 그 온기. 오랜만에 느껴지는 온기였다. 다리 부종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직후부터 다리에 착용한 다리마사지기의 작동에 맞춰 끝없이 흉식호흡을 했다. 딱 좋은 리듬이어서 다행히 폐의 회복에 어려움이 없었다. 불현듯 자신의 가슴을 감싸안은 자세로 흉식호흡을 시킨 필테샘 생각도 났다.


몇시간 후 의사샘과 전날 입원시 보았던 전문간호사 님이 오셨다. 나도 모르게 간호사님께 "선생님. 너무 반가워요"라고 말해버렸다. 수고하신 의사샘께는 감사합니다. 한마디 겨우 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간호사님을 보자 사르르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간호사님은 링거줄이 꺾였다며 주머니 속 수많은 도구 중 가위와 반창고를 꺼내 능숙하고 빠르게 링거줄을 정리해 팔에 다시 고정해주셨다.


밤이건 낮이건 나를 들여보고 전문적인 능력으로 조치해주고 교대시간에 반드시 두분이 같이와 교대한다며 알려주던 여러 간호사님들도 그렇게 안심이 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회진시간마다 오셔서 일어나라, 걸어야 한다, 드럽게 맛없지만 미음먹고 힘내라, 계속 웃음 섞인 잔소리를 하셨다. 엉덩이도 한대 맞았다. 부담없이 언니같이 느껴져서 좋았다.


친절이 형식화되는 건 좋지 않겠지만, 전문성과 친절이 한데 모이니 그렇게 믿음직할 수가 없었다.

퇴원 후 의무기록을 발급받아 보니,

마취시간 08:11~10:27

(예상이 4시간이랬는데, 의외로 빨랐다)

수술시간 08:50~10:15

출혈량 100ml

라고 되어 있었다.


무덤덤한 암환자, 뭔가 이상한 건가?


6월5일 초음파에서 이상을 발견했을 때는 일단 기분이 좀 나빴다.

7월1일 암이라는 이야기를 고대병원에서 들었을 때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충격까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진단서를 요청하고 MRI를 다른 병원에서 찍을 거라는 내 말에 뭔가 기분나쁘게 대응하던 고대병원 간호사에게 기분이 나빴을 뿐이었다.


7월7일 고대병원의 CT 영상을 보고나서 80% 암으로 진단한다며 패드에 열심히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던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던 순간에도 이 선생님, 참 매력있구나.라는 한가한 생각을 했다.

아산병원을 드나들며 각종 검사를 하고 나서 다시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머리속에 각종 보험금을 계산하고 있었던 거 같다. 놓치지 말고 잘 받아서 오로지 나한테 유리한 방법으로 잘 치료받자 라는 생각.

의무기록에 이날 환자상태에 "여유있음"으로 기록해두신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일까? 어떤 연구에 자료를 이용한다는 동의서를 3장쯤 사인한 거 같다.


수술날짜를 받아들고는 날마다 신나게 살았다. 그동안 산동네 학교에 박혀 있느라 못했던 것들을 하고, 못갔던 곳들을 많이도 갔다. 음식도 스스로 잘 만들어 먹었고, 운동도 꼬박꼬박 했다. 고3 아들에게 필요한 도움들도 놓치지 않고 챙겼다. 좋은 시간이었다.


암'선고'라고 느껴지지도 않았고, '도대체 왜?'라는 자기연민이 생기지도 않았다. 삶을 몽땅 바꾸리라는 의지에 불타지도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잘 먹고 잘 지내는 것만이 목표가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의외이긴 하다. 암이 초기에 발견되어 절제하고 관리하면 잘 살 수 있을 거 같았고, 또 김이 자신에게 닥친 병을 하루하루 잘 사는 것으로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걸 옆에서 지켜봐서일 수도 있겠다.


또 이건 가장 결정적이긴 한데, 50이 넘어서자 "억지로 애써서 되는 일은 없다"는 자세로 살기 시작한 게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50년동안 늘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 담론을 논하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사람, 나, 가족, 일상이 제일 중요하게 되어버렸다.

모든 것은 과정이다. 목표도 지향도 가벼우면 된다. 그 과정을 충실하게,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거치다보면 원래 지향은 아니어도 좋은 곳에 다다라 있곤 한다.


사람에게 친절하게

그래도 일만 하다 죽긴 싫어!


그래서, 세상에, 2000년쯤 전 사람이 쓴 저 문장에 위안이 밀려오고 안심이 되었나 보다.

역사에 신세진 것도, 내가 남겨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내가 오늘을 잘 살면 될 뿐.


아직은 움직이면 수술부위가 당기고 1시간 서 있으면 신장부위와 허리가 아파 누워야 한다.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밥을 차려먹어야 겠다.


퇴직하고 한 10년만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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