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특례 대상자가 되다
수술 후 3주에서 하루 빠지는 날, 진료를 받으러 갔다. 3일 전에는 뼈스캔을 받았고, 당일 진료 2시간 전에 가서 채혈을 했다. 우리 멋진 선생님을 다시 만나는게 좀 기대되었다.
"어? 스타일이 좋아지셨는데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머플러 하나를 두르고, 다 빠져가는 눈썹을 펜슬로 그리고, 오랜만에 머리카락에 에센스를 좀 발랐더니 들은 소리다. 역시 우리 샘은 멋지다. 근데 내 대답은 멋이 없다.
"음.. 인제 좀 정신이 들어서요."
너무 솔직했다.
절제한 암종 사진을 보며 들은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3.8cm, 1기
혐색소형 암세포(비투명세포암)
얌전한 암에 속함. 그러나 세포 자체는 악성도 1~3중 3.
2. 96%는 5년내 재발 없음
3. 재발시는 간이나 폐로 전이하는 경우가 많음
4. 체중조절 필수
5. 내장지방이 위험함. 붉은고기 인스턴트 등 최소화
6. 채소, 콩단백질 주로 섭취. 물 많이 먹고 음식은 싱겁게
7. 3개월 후 검사와 진료. 이상 없으면 이후엔 6개월마다 검사 진료
8. 산정특례자 지정됨
수술 부위를 한번 보시고는 잘 아물고 있다며 한달까지는 복대를 꼭 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는
"날씬하신 줄 알았는데, 배가 좀 있으시네?"
으아. 치부를 들켰다.
"배가 좀 많습니다.ㅜㅜ 빼볼게요."
인터넷으로 진료신청을 할 때 한점의 망설임도 없이 송채린 교수를 검색했었다. 명의에 등장하여 시원시원한 설명과 능숙한 수술을 본 것도 있지만, 워낙 여성 전문가들을 신뢰하는 내 성향도 한몫했다. 나의 직감은 틀지지 않았다.
병원 선택도 너무 잘했다는 생각은 이미 여러번 했다. 성향상 대기업을 좋아하지 않아서 병원 앞에 대기업 이름이 붙는 걸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일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고, 근무자들의 전문성과 친절은 말할 것도 없고 환자를 배려하는 작은 팁들이 곳곳에 배어 있어서 좋았다. 개인의 노력이나 희생보다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걸 환자가 느낄 정도로 모든 과정에 무리가 없었다.
공간이 넓고 진료실이나 병동으로 갈 때 출입증을 발급하여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너무 좋았다. 자동화된 각종 시스템 기계 옆에는 충분한 보조인원이 근무하고 있는 것도 좋았고, 각 직원들이 지나칠 때 서로 부드럽게 인사하는 것도 좋았다. 이날은 우연히 지하 복도에 병원의 역사를 전시해 둔 공간을 지나는데, 중요한 의료적 성과를 이룬 의사들의 얼굴과 실명을 함께 드러내 둔 것도 너무 좋았다. (간호사나 다른 직종들이 없다는 건 좀 아쉬웠지만) . 지하에는 현대백화점 팝업스토어도 있고, 각종 식당과 샐러드와 당근케익이 맛있는 빵집 베즐리,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옷, 책, 화장품, 액세서리를 파는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작은 쇼핑몰도 있다.
진료 전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는 18층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를 했다. 그 뷰도 멋졌지만, 음식의 질도 훌륭했다. 그날 먹은 샐러드파스타는 정말 최고였다. 여행하듯 유람하듯 병원을 이용했다.
10월20일을 시작으로 5년 동안 산정특례 대상자가 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진료당일 오전에 4만원 정도 결제했던 진료비를 진료 마치고 나오는 길에 모두 환급받고 3천원 정도만 결제했다. 암진단을 받고 나서는 정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게 감사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최고의 기술로 암절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나라, 의료보험 혜택을 이렇게 많이 받을 수 있는 나라, 아프다고 병가와 병휴직을 쓸 수 있는 직장, 직장에서 들어준 실손보험(과잉의료를 불러오는 부작용은 있지만)의 도움을 이렇게나 많이 받고, 앞으로 5년 동안은 또 열심히 치료받으라고 도와주는 나라라니. 모두 어렵던 시절에 아산사회복지재단이라는 걸 만들고 아낌없이 투자하여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 고 정주영 회장님의 긴 안목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진료 마치고 나오는 길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약 4개월 동안 즐겁고 편안하게 살았지만, 정작 마음은 무거웠나보다. 상쾌한 기분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