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의 헤어질 결심
주오대학 타마캠퍼스의 면접시험장까지는 jr야마노테센-jr주오센-타마 모노레일로 1시간 30분 이상 걸린다. 늦은 밤까지 영어와 일본어로 다양한 질문에 답하는 연습을 하다가 피곤에 지쳐 잠들었지만, 늦짐꾸러기 잠만보도 이날만은 6시에 벌떡 일어났다.
"힘들지. 그래도 끝까지 해내는 수밖에 없는 거지 뭐" 하더니, 그래도 자기 앞에 떨어진 몫을 천천히 끝까지 감당하려 했나본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력도 꽤 늘어나 있었다.
서울에는 눈예보가 있다더니, 도쿄도 기온이 급강하해서, 도쿄 특유의 '뼛속에 스미는' 찬 날씨였다. 모노레일 창밖 마을 배경으로 멀리 후지산이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정도로 긴장한 아들의 어깨를 안아주고 시험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틀 전 미리 학교에 와봤을 때, 학교가 너무 예쁘고 환경이 아름다워서 둘 다 홀딱 반했는데, 좋아진 만큼 더 긴장이 되었나보다. 중국 수험생들이 꽤 많이 들어갔고, 다른 건물들로 검은 정장을 어색하게 갖춰입은 일본 학생들도 본고사와 면접을 위해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첫 관문에 설레며 선 모든 젊음들을 맘속으로 응원했다.
넓은 로비의 자판기에서 뽑은 도토루 캔커피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2년 전 겨울 교토와 나라 여행을 하면서, 엄마, 나 일본에 유학 올까? 농담처럼 건넸던 아이. 1주일 여행 내내 함께 대화하고 고민한 후 서울로 돌아가는 간사이 공항에서 유학을 준비해보겠다고 선언했다.
가족 중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 혹시나 내가 내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일(20대 때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하지 않은 일)을 은연 중 아들에게 보상받고자 한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생후 9개월 되던 여름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시작했던 아들은 이후 수차례 함께 일본을 여행했고, 아기때부터 나와 함께 지브리를 사랑했다. 호치민에서 사는 동안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의 매력을 알게 된 아이.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 한국이 버거운 아이. 먹는 것과 입는 것 모두 프랜차이즈화된 기준이 맘에 들지 않는 아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겠다는 아들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 인생이 한방으로 결정되지는 않으니, 성실하고 착하게 살다보면 처음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좋은 곳에 다다를 수 있다는 확신이 50 넘어 생겼다.
하지만 일본 유학시험 준비를 시작한 후 내 눈에 비친 아들의 모습은 늘 '부족함' 투성이었다. 한자는 제대로 외우고 있는지, 작문 연습은 하고 있는지.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조언"이라는 포장을 썼지만 결국은 "잔소리"였다. EJU 점수도 성에 차지 않았고, 면접을 코앞에 두고도 수능 끝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에 속이 터졌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마음속으로 '6개월 재수'를 각오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도쿄에 와서 면접을 준비하는 며칠간, 나는 낯선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열아홉 살. 내가 그 나이였을 때를 떠올려 본다. 감히 외국으로 떠날 생각은커녕, 영어와 일본어로 내 생각을 말하고 평가받는 자리에 서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비록 아주 유창하진 않아도, 잔뜩 긴장해 떨면서도, 아이는 도망치지 않고 그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다.
'아, 참 대단하다.'
기특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합격 여부를 떠나, 저 문 안에서 낯선 외국어로 면접관들과 홀로 마주하고 있을 아들은 이미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하게 자라 있었다.
둘째 아들은 나에게 아들의 역할만 한 게 아니다. 베트남에서 보낸 2년 반의 시간, 아이가 열 살 때부터 함께 다녔던 수많은 여행들. 녀석은 나의 아들이자 여행 메이트였고, 감성이 통하는 최고의 친구였다. 속상한 마음도 기쁜 순간도 모두 서로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듣는 음악도 보는 영화나 드라마도 같은 감성이었고, 아들이 소개해주는 음악들은 곧바로 나의 좋아요 플레이리스트에 삽입됐다. 나는 아들에게 사카모토 류이치나 메탈리카, 비틀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와 드뷔시의 달빛을 전해주었다.
아들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때 나도 함께 시작했다. 원래는 일본 파견근무를 목표로 한 출발이었다. 덕분에 n3도 따고 기초 회화도 하고, 이번 입시준비를 하면서 그 복잡한 모집요강을 읽고 원서준비를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암진단을 받고 한동안 직장을 쉬게 된 것도 아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달콤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키는데, 문득 서글픈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제 너와 거리를 두어야 할 때구나.'
나의 품 안에서, 서로의 보폭에 맞춰 걷던 여행은 이제 끝났다. 시험장 문이 닫히는 순간, 아이는 온전히 자기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내가 대신 대답해 줄 수도, 손을 잡아줄 수도 없는 그곳에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 괜찮다. 부족해 보였던 시간 속에서도 너는 자라고 있었고, 엄마보다 훨씬 더 용감하게 너의 세상을 두드리고 있으니까.
면접을 마치고 오츠카의 비좁은 맨션으로 돌아올 녀석에게 잔소리 대신 환한 웃음을 보여줘야겠다.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나의 여행 친구에게.
나는 또 나만의 여행을.시작해야지. 다른 여행친구도 좋고 혼자만의 시간도 좋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캔을 쓰레기통에 넣고 사쿠라광장을 지나 주오대 정문을 나섰다. 잘 하고 와라 아들아. 나도 이제 홀로서기를 시작할게. 이따 저녁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