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나는 걷고 있었다
그 학생과의 레슨 이후,
조금씩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소문이 났는지
레슨 문의가 하나둘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고,
끊겼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학원 문을 여는 발걸음도
조금씩 늘어났다.
2013년 여름,
다섯 번째 정기연주회는
반포아트홀에서 열렸다.
예전처럼 욕심을 내지도,
무리한 프로그램을 짜지도 않았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했다.
연주회는
조용히, 그리고 무사히 끝났다.
그날 무대에서
큰 환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 나온
“다행이다”라는 말은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이 아닌
담담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주회가 끝난 뒤에도
레슨은 계속 이어졌다.
학생 수가 급격히 늘지는 않았지만,
대신 쉽게 그만두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나는 그제야
‘가르친다’는 일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잘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책임지는 일.
기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주는 일.
그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믿고
곁에 남아준 사람들에게
나는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그리고 그 생각은
조금씩
하나의 결심으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독주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바로 그때쯤이었다.
제대로 보답하는 길은
연주라고 생각했다.
거창한 곡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곡들로
레퍼토리를 짜기 시작했다.
가요,
영화 음악,
그리고 가벼운 클래식까지.
손은 이미 많이 아픈 상태였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렵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있던
클래식 카페 홀
(현 엘림아트홀)을 알게 되었고,
세 시간 정도 대관 예약을 해두었다.
레슨 중간중간
틈을 내어 연습을 했다.
악보를 놓고
MR 반주에 맞춰 연주를 하다 보니
문득 울컥했다.
손이 아파
연주를 하지 못했던 시간들,
학원을 운영하며
답답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래 연습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마침 학부모님 중
작곡을 전공하신 분이 계셔
조심스럽게 반주를 부탁드렸고,
흔쾌히 함께해 주셨다.
연주회 당일,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계셨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라
긴장이 되었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곡을 연주하는 순간,
그 떨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힘겹게 버텨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한 음, 한 음
차분히 연주해 나갔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유재하의
〈가리어진 길〉이었다.
개인적으로
오래 좋아해 온 곡이었고,
그 가사가
유난히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모든 순서가 끝난 뒤,
몇몇 분이 다가와
“정말 좋은 연주였다”라고
말해 주셨을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이 밀려왔다.
2013년의 마지막은
내 기억 속에
아주 오래
여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