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간을 맡는다는 것
그 연주회 이후로
나는 음악을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다.
거창한 각오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를 또 한 번 믿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도 다시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무렵, 한 학생을 만났다.
어느 날 학원에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문의 좀 드리려고요.”
오랜만에 걸려온 문의 전화였다.
“저희 아이가 사실 발달장애가 있어요.
혹시 그런 아이를 가르쳐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요.”
“아, 그럼 힘드시겠네요.”
전화를 끊어야 하나 망설이던 순간,
입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
“혹시 괜찮으시면 아이와 한 번 방문해 보시겠어요?”
“네, 그럼 지금 가도 될까요?”
“네.”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못 가르치면 어쩌지?’
‘괜히 아이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학생과 어머니가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학생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눈빛은 유난히 반짝였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거의 되지 않았다.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악기를 배워서
소리는 제법 냈지만,
틀린 부분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30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아주 미세하지만,
소리가 조금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어머니도 그 변화를 느끼셨는지
바로 등록을 하고 돌아가셨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 반 레슨.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처음 몇 달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소통이 되지 않다 보니
레슨은 늘 제자리걸음 같았다.
한 달, 두 달,
세 달… 여섯 달이 지나도
눈에 띄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이제 그만해야 하나.’
어머니께 솔직히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먹던 즈음,
학교에서 부르는 가요 한 곡을 연습시키게 됐다.
박자가 틀어져도, 음이 어긋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반주 MR을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고
그냥 연주해보게 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박자로,
거기에 감정까지 실어 연주를 해낸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천재구나.’
그 이후로는
곡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항상 반주와 함께 연습했다.
콩쿠르를 준비할 때는
윤준이와 함께 몇 시간씩 붙어서 연습을 시켰고,
결국 좋은 성적으로 입상했다.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이 아이도
다른 전공 학생들처럼 떠나보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 학생은
연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를 가르치며
처음으로 ‘레슨’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레슨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
그때 마음속에 새긴 문장이 있다.
레슨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