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지 않아도 괜찮았다
2015년 겨울,
성호의 대학 입시가 있던 해였다.
사실 성호와는
그보다 몇 해 전,
중학교 3학년 무렵에 한 번 작별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입시를 준비하게 되면서
성호의 아버님 지인분이 알고 계시던
입시 전문 클라리넷 선생님께
레슨을 받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잘 되었다고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입시 전문 선생님이
나와 오래 알고 지내던,
꽤 가까운 형이라는 것이었다.
그 인연 덕분에
“같이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고,
나는 다시
성호의 연습을 함께 지켜보는
선생님으로 곁에 서게 되었다.
입시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고 정리해 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그때부터 나는
성호의 연습을 ‘끌고 가기’보다
흐트러지지 않게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
혹시라도
내가 개입하는 순간
방향이 어긋날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큰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면
나는 그 안에서
연습 방법과 디테일을 하나씩 정리해 주었다.
성호는
학교 공부를 제외한 시간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연습에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슨 도중 성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에 통증이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조건 쉬어.
깁스를 하더라도 괜찮아질 때까지 연습하지 마.
지금 며칠 쉰다고
실력이 퇴보하진 않아.”
그 말은
성호를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나 역시
무리한 연습으로
연주자의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성호는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며칠 동안 깁스를 한 채 지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앞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무너질 때 바로잡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괜히
함께 가르쳤다가
오히려 피해가 되지는 않을지
나는 매일같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호가 연습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졌다.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기술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간절함이
악기 안에 담겨 있었다.
나 역시 마음 한편에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내 학생 중 누군가
최고의 학교에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침 성호는
한예종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경쟁자들은 쟁쟁했고,
어릴 때부터 악기를 잡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드디어
한예종 1차 시험 날이 밝았다.
하루 종일 긴장해서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고,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흘러갔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선생으로서의 큰 도전이었다.
레슨 중 잠깐 쉬는 시간,
시계를 보니
한창 시험을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제발,
큰 실수 없이
후회 없이만 보고 오게 해 주세요.’
몇 시간 뒤
성호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큰 실수 없이 잘 보고 왔어요.”
“수고했어.
후회 없지?”
“네. 후회 없이 하고 왔어요.”
며칠 뒤,
큰 선생님인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석환아,
성호 1차 붙었어.”
너무 기뻤지만
아직 2차 시험이 남아 있었기에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호를 도왔다.
그리고 2차 시험 날.
시험장에 가기 전
짧은 문자를 하나 보냈다.
‘최선을 다했으니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보고 와.’
시험을 마친 뒤
성호는 학원에 들러 말했다.
“선생님,
오늘도 후회 없이 봤어요.
그동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과 나오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날 이후
며칠이
몇 년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슨 중 전화가 울렸다.
“선생님, 성호예요.
저… 합격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동안의 긴 시간과 걱정이
눈 녹듯 사라져 내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성인반 학생분들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셨다.
그 순간만큼은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2016년의 어둠이
이미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