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수록 더 불안해졌다
일상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레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잘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조금씩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2015년,
학원을 운영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였다.
속으로는
‘그래도 10년을 버텼네, 대견하다’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불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학생 수는 많았지만
그만큼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 불확실함 때문에
잠을 설친 날이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중,
5월 뉴스에서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메르스.’
신종플루를 겪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몸이 먼저 반응했다.
‘겨우 버티고 있는데…
또 이런 게 오는 건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취소 문자가 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여기까지인가 보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당시 레슨을 받던 성인 한 분이
악기 수리를 맡기러 갔다가
마음이 상해 돌아오신 것이다.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악기사에 갔는데요,
전공생 악기 위주로 보시는 것 같아서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어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메르스로 이미 흔들리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일까지 겹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 무렵,
예고 후배이자 대학 후배인 은호가
악기사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친분이 깊지 않았지만
먼저 연락이 왔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신종플루만큼 길지는 않았다.
2015년 7월쯤 종식 선언이 나왔고
몇몇 학생은 다시 돌아왔지만
대부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게 되는
몇몇 성인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마음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레슨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연주회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여름이 다가오자
겨우겨우 연주할 학생들을 모아
반포 리코디아 아트홀에서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학생반과 성인반을 나누어 진행했다.
학생반에서는
악보를 안 가져온 학생도 있었고
악기를 집에 두고
케이스만 들고 온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 않고
연주회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성인반은
외교원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 다섯 분을 포함해
총 열두 분이 무대에 올랐다.
그때까지 성인반 중
가장 많은 인원이 함께한 연주회였다.
이상하게도
그 연주회를 기점으로
학생들이 하나둘씩 학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학년이 올라가서,
해외로 나가게 돼서,
흥미를 잃어서.
그때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한다고,
잘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구나.’
그렇게 나는
뚜렷한 목표를 잃은 채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고 있었다.
분명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