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클라리넷이야기 36편-외교원에서 나는 다시 사람 앞에

피하지 않고 마주한 순간

by 문석환

외교원 수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악기를 처음 만졌고,


누군가는 음악이 왜 필요한 지부터 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클라리넷을 가르치러 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서는 연습을 다시 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수업은 화요일과 목요일 점심시간,


1시부터 1시 50분까지 50분 동안 진행되었다.


열 명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그룹 레슨이었다.


첫 시간에는 악기조차 없는 분들이 꽤 계셨다.


미리 부탁해 두었던 악기사 사장님이


시간에 맞춰 직접 악기를 들고 와주셨고,


나는 악기 조립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개인 레슨과는 전혀 달랐다.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돌아다니며 한 분씩 봐드리다 보면


시간은 늘 예상보다 빨리 흘러갔다.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그날 수업은 정신없이 끝났고,


다음 시간에야 겨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솔, 파, 미, 레, 도.


아주 기초적인 음계 연습이었지만


수업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드렸다.


“제가 12시쯤 먼저 올게요.


혹시 일찍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조금 개인 레슨으로 봐드릴게요.”


모두들 반갑게 웃으셨다.


몸은 분명 더 힘들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한결 편안해졌다.


수료식에는 클럽별 발표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촉박했고,


기초 연습과 곡 연습을 동시에 해야 했다.


다행히 모두가 성실하게 따라와 주셨고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갔다.


그 무렵, 여름 학원 정기연주회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홀이 사라져


뒤늦게 대관을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다행히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공연장을 구할 수 있었다.



외교원은 마침 방학 기간이었고,


나는 연주회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학생반과 성인반으로 나누어 진행된 연주회는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다만 홀 측과의 마찰로


공연 영상을 받지 못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조차 지금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



5회 정기연주회를 기점으로


학생 수는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사적인 약속을 거의 끊고


일주일 내내 레슨에만 집중했다.


매일 똑같은 하루였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학원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생각에 혼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전공생 레슨은 거의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한계를 느꼈고,


무엇보다 전공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더 훌륭하고, 더 전문적인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호와 수인이만 남긴 채


다른 전공생들과는 작별을 고했다.



환희와 허탈감이


묘하게 겹쳐 있던 그 시기에


외교원의 마지막 수업 날이 다가왔다.


정이 많이 든 만큼


헤어짐은 더 아쉬웠다.


발표회를 위해 두 곡을 정해


몇 달 동안 연습해 왔기에


마지막 날은 총연습을 했다.


호흡도,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발표회는 2014년 12월 10일,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저녁 연주였기에


학원에서 레슨을 마치고


시간에 맞춰 외교원 강당으로 향했다.


리허설에서는 모두가 긴장한 탓인지


연주가 자꾸 어긋났다.


“긴장하지 마시고,


즐기는 마음으로 연주하시면 좋겠습니다.”


말은 했지만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서로를 격려하며


본 연주에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리허설보다 더 어긋났지만,


다행히 처음과 끝은 맞았다.


그렇게 연주는 무사히 끝났다.


그 인연으로


몇 년 뒤 개인 레슨을 찾아오신 분도 계셨고,


2015년을 끝으로


나는 외교원 수업을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된다.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나는


클라리넷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서는 법을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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