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클라리넷이야기 40편 -조용하게 시작된 앙상블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

by 문석환

2017년은 나에게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움직임이 시작된 해였다.


어느 날, h배우님과 레슨을 마치고


늘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앙상블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순간 반가움이 먼저 스쳤지만


곧바로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지금 내가 그런 걸 시작해도 될까.’


나는 당연히


성인반 분들 중에서 팀을 꾸리고 싶어 하시는 줄 알았다.


“아, 네. 그럼 성인반 분들 중에서


한번 멤버를 만들어볼게요.”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혹시 연주하시는 선생님들 중에


뜻이 맞는 분들이 계시면


같이 하고 싶어서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곧,


취미가 아닌 ‘연주’의 영역으로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아… 네.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레슨이 끝난 뒤에도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무렵,


오래 알고 지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후배들이 떠올랐다.


성수, 인호, 순형이,


그리고 함께 일하던 윤준이까지.


‘그런데…


갑자기 앙상블을 하자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 당시의 나는


누군가를 이끌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아주 짧은 문자를 보냈다.


물론, h배우님 이야기는 숨긴 채로.


“잘 지냈지?


혹시 괜찮으면


앙상블 팀 하나 만들어서


같이 연주해 볼래?”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온 답장은 모두 같았다.


“좋죠. 언제 모일까요?”


그 문자를 읽는 순간,


설렘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웠다.


우노스 악기사 사장님이자


후배인 은호에게 총무 역할을 부탁했고,


다시 h배우님께 말씀드렸다.


“잘됐어요.


그럼 8월쯤 한번 모이죠.


아, 근데 제가 같이 한다는 건


일단 비밀로 해주세요.”


약속 장소는


늘 모이던 학원 근처가 아닌


조금 분위기 있는 호프집으로 잡았다.


괜히 그날만큼은


제대로 된 ‘시작’처럼 느껴지고 싶었다.



약속 당일,


이미 후배들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형, 웬일로 이런 좋은 데서 모여요?” “아, 그냥…


이쪽으로 한번 와보고 싶어서.”


맥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앙상블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내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선생님, 저 바로 앞이에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후배들에게는


“한 분 더 오실 거야”라고만 말해두고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는 그 몇 초가


이상하게도 아주 길게 느껴졌다.


문 앞에 서 있는 얼굴을 본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


“형… 왜 미리 말 안 했어요?” “아니, 이건 반칙이지.”


원망 섞인 농담이 이어졌지만


곧 웃음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앙상블의 방향, 연습 방식,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게


사마르 클라리넷 앙상블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시작되었다.



그해 11월,


동창의 소개로


명동성당에서 봉사 연주를 하게 되었다.


관객들은


무대 위 h배우님의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아이네 클라리네 나흐트무지크 1악장,


〈옛사랑〉,


〈G선상의 아리아〉.


연주를 마치고 나서야


‘아, 우리가 제대로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성인반 연주회에서도


학생들 앞에서 함께 무대에 섰고


2017년은 그렇게


기분 좋은 여운 속에서 저물어갔다.



다만,


12월 송년연주회에서는


시간 지연으로 인해


다음 대관팀과 마찰이 생기며


조금 씁쓸하게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혼자 앞서간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을 앞두고


학생 수는 다시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 마음 한편에


‘분점’이라는 단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상하게도


조금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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