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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 Yoon Jun 15. 2022

나의 최애(最愛) 음식: 잔치국수

결혼하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었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남편을 위해 한껏 솜씨를 발휘해 저녁상을 차렸다.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찌개를 한입 먹어본 남편은 실망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내가 맛이 없냐고 묻자 남편은 신김치나 묵은지로 찌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풋김치로 요리를 해서 맛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김치찌개용 김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정에서는 김치찌개를 거의 먹지 않았다. 신김치로는 대부분 볶음밥을 해 먹거나 콩나물을 넣고 국을 끓였다. 아마 고기를 싫어하는 아버지의 입맛 때문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김치찌개는 어머니가 만들지 않았던 듯하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나는 다른 식성으로 자주 의견이 충돌했다. 누구의 입맛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성장환경 속에서 형성된 맛에 대한 어떤 취향은 서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가령 남편은 식사 때 꼭 국이 있어야 했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설령 내가 국을 먹는다고 해도 뜨거운 걸 싫어하는 나는 미지근한 국을 선호했지만, 남편은 사계절 내내 높은 온도를 고집했다. 부부 사이라도 서로의 입맛을 조율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20년 이상 살다 보니 이제는 얼추 서로의 입맛이 비슷해져 있었다. 내가 돼지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간 신맛이 나는 김치찌개를 즐기고, 남편은 양파, 콩나물, 버섯과 무를 섞어 지은 나물밥에 양념장을 곁들어 먹는 걸 좋아했다.     

 

서로의 이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내가 지금까지 양보하지 못한 입맛이 하나 있었다. 그건 국수에 대한 취향이었다.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은 날에 내가 국수를 만든다고 하면 남편은 으레 칼국수이겠거니 짐작했다. 바지락을 우려낸 국물에 애호박과 감자, 파 등을 숭덩숭덩 큼직하게 썰어 넣고 한소끔 잘 끓여낸 칼국수에 양념장과 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게 남편에겐 국수 요리였다. 그러나 내겐 잔치국수를 의미했다. 가늘게 채를 썬 애호박과 당근을 들기름에 볶아 채소 고명을 만들고, 소면을 삶다가 마지막에 부추를 넣고 한번 휘휘 저어 면을 꺼낸 후 찬물에서 서너 번 헹궈낸다. 진한 멸칫국물에 양파와 대파를 넣고 끓이다가 달걀 물을 풀어 육수를 만든다. 부추가 들어간 면을 대접에 넣고 육수를 부어 채소 고명, 김가루, 깨소금을 뿌려 말아낸 잔치국수를 양념간장과 곁들어 먹으면 더할 나위 없는 세상 최고의 국수 요리였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서로의 국수 요리를 싫어했다. 나는 칼국수의 찐득거림이 싫었고 남편은 잔치국수 면발에 육수가 배어들지 않고 따로 노는 듯한 밍밍함이 싫다고 했다.     


남편과 나의 ‘국수 신경전’은 딸과 아들이 태어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서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다수결의 원칙하에서 각자의 국수 요리를 식탁에 올리도록 노력했다.

“아빠가 말이지, 어릴 때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꼭 할머니께서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서 칼국수를 만들어 주셨거든. 국수를 자르고 난 반죽 끄트머리는 삼촌이 불을 때고 남은 아궁이 숯에다가 구워줬는데 그게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었는지! 아빠에게 칼국수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이야.”

칼국수를 저녁으로 먹던 어느 날 저녁,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입에 넣으려다 허공에서 멈춘 채 남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이들과 같이 남편의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 건 누군가와 함께했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잔치국수도 내게는 그런 존재였다. 가난한 집에 시집온 어머니는 아버지가 혼자 꾸려가는 철물점만으로는 살림이 어려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장에서 노점을 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와 동생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빈집에서 늦은 저녁까지 부모님을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배가 고프면 우리는 아침에 어머니가 해놓은 밥과 국으로 허기를 때우기 일쑤였다. 골목에서 뛰어놀다가 간식을 먹으러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왜 다른 친구들처럼 집에 엄마가 없을까. 나와 동생들의 처지가 신데렐라나 콩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가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바로 비나 눈이 오는 날이었다. 그런 날에는 우리를 위해 어머니는 간식으로 잔치국수를 말아줬다. 특히 여름 장맛비가 오는 날, 마루에 앉아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먹었던 국수는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였다. 수돗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양은 세숫대야에 떨어지던 빗소리, 커다란 고무대야 안에 비가 떨어지며 만들던 물둘레, 내가 국수를 먹으며 내던 호로록거리는 소리,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모습, 이 모두가 나의 최애(最愛) 음식인 잔치국수에 녹아있다.     

 

이렇듯 국수 요리는 단순한 입맛 차이가 아닌 서로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음식이라 그런지 남편과 나는 여태껏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냥 지금처럼 칼국수, 잔치국수를 번갈아 가며 해 먹는 것이 제일 좋을 듯하다. 그런데 우리의 두 아이는 칼국수도 잔치국수도 아닌 스파게티를 가장 좋아했다. 국수 요리에 대한 아이들의 추억은 분명 우리와는 사뭇 다르게 그려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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