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을 사러 갔는데 가게 바로 앞에서 한 할머니가 참외를 팔고 있었다. 제대로 벌인 좌판도 아니었다. 집에서 오랫동안 썼을 법한 닳고 닳은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 세 개를 길바닥에 늘어 놓았는데 각각의 바구니 안에는 참외 서너 알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어떤 과일장수는 예쁜 삼각형처럼 과일을 탐스럽게 쌓아 놓던데 할머니의 참외는 누군가 멀리서 ‘제발 들어가기만 하라’는 식으로 그냥 바구니 안에 막 던져놓은 것 같았다.
8월 한낮,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도로 위 모든 것은 끓고 있었다. 열기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할머니는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복권가게로 들어가려던 나를 불러세웠다.
“아줌마, 참외가 엄청나게 달아. 하나 사가. 내가 싸게 해줄게.”
한 바구니당 가격은 8천 원이었다. 세금 제하고 실수령액 10억 원을 노리고 복권을 사러 가던 나는 할머니의 호객행위에 당황했다. 신성한 노동과 망상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참외를 파는 할머니 앞에서 나는 감히 한 방을 노렸노라고 고백할 수가 없었다. 10억을 벌려면 저 할머니는 대체 몇 개의 바구니를 비워야 하나. 얼핏 계산해도 족히 12만 개 이상의 수가 나온다.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들었다. 복권 2장을 사기 위해 챙겨왔던 주머니 속 2천 원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가게 안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아줌마, 참외가 싱싱하다니까!”
할머니의 간절한 목소리가 내 뒤통수로 날아와 꽂혔다. 참외를 사기엔 6천 원이 모자란다는 얘기를 굳이 할머니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들 사는 게 쉽겠느냐마는 그래도 때로는 어떤 이의 삶이 더 성실한 순간이 있다. 부디 당부하건대, 헛된 욕심에 시달리지 않기를. 기실 따지고 보니 무서운 건 더위가 아니라 나의 망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