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그리울 온기
아이의 감기 케어 5일 차, 수족구가 추가로 발견된 2일 차 밤이었다.
잠자리에 누운 둘째가 토해낸 것들을 다 정리하고,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우리 부부는 그냥 소파에 뻗었다. 모든 병세가 심각하지도,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지도 않았고, 오히려 시원한 듯 누나랑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날은 첫째가 열이 나서 조퇴 후 학교를 가지 않은 2일 차였던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웃고, 서로 돕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해결되지 않는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부모인 우리를 자꾸 눌러낸 건 아닐까.
그날 오후에 이미 아이들과 마트를 다녀오고 싸우고, 버릇없이 구는 아이들의 행동을 혼내고 진이 다 빠졌던 날이었다.
아픈 아이들에게 연신 “싸우지 마, 흘리지 마, 때리지 마, 그만해, 엄마 좀 그만 불러.”라며 짜증 내며 아이들을 돌보는 하루들이 나를 자꾸만 자책하게 만든다. 그러다 그런 생각도 했었다.
내가 만약 워킹맘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답은 내리지 못하고, 그저 얼굴에 묻은 얼룩처럼, 옷에 붙은 먼지처럼 툭 하고 귀찮듯 털어낸다.
오늘은 나도 덩달아 아픈 날이었다.
잠결에 남편이 혼자 출근하는 현관문 소리를 듣고 일어나 첫째 담임선생님께 결석 메시지를 보내고, 쏟아지는 기침 때문에 거실 소파에 쭈그리고 누워 있다가 아이들의 소리에 일어난다. 아침부터 영역 싸움에 분주한 와중에도 아이들은 엄마를 귀찮게 해야 한다.
자기가 만든 소중한 종이 조각들을 보여줘야 하고, 자기가 잔뜩 어질러 놓은 장난감 더미도 보여줘야 하고, 밤새 올라온 간지러운 부분도 보여줘야 하고 또…. 감히 본인들이 일어났는데 고요히 눈 감은 엄마는 절대 용납이 안 되기에.
이상하다. 몸이 안 움직인다. 손 마디마디, 온몸이 아프고 무겁다. 머리도 아프고 곧 터질 생리통도 준비 중이다. 발은 차갑고, 입술은 뜨겁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말에 “5분만”이라는 말을 5분 동안 하고, 드디어 일어난다.
아이들의 아침으로 딱딱한 그릇에 딱딱한 시리얼을 붓는다. 아침부터 죄책감으로 시작한다.
얼른 먹이고, 약을 먹이고, 둘째 호흡기 치료기를 해주는 사이 TV를 보고 있는 첫째에게 다가가 안아 준다. 아이의 엉덩이를 연신 토닥이며 속으로 ‘사랑해’라고 말한다. 아이는 본인이 보는 애니메이션을 신나서 설명한다. 이내 피곤함이 몰려온다.
둘째 아이 호흡기 치료 종료 알람이 울리고, 서둘러 마무리하고 내 밥을 차린다.
꾸역꾸역 먹고 진통제와 비타민을 삼킨 뒤, 아이들과 함께 넷플릭스 영화를 시청한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 침실에 들어와 누운 지 20분 후, 아이들이 하나둘 침실로 온다.
첫째 아이가 옆에 눕길래 손을 주물러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의 손이 너무 부드럽고 말랑하다.
순수하고 새것 같은 살로, 거칠고 영악한 어른의 손을 잡아준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편안했다. 아이에게 마사지를 잘해주면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신나서 열심히 주물러 대는데 방해꾼 둘째가 방으로 들어오고 둘은 또 영역 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그에게는 나의 다리를 맡겼다.
그녀가 매니큐어를 가져와 내 손에 발라준다.
그사이 그는 누나의 빗을 흥정해서 가져와 아프고 부드럽고 재밌게 빗어준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걸리버와 난쟁이들 같다.
누나가 다 쓴 매니큐어를 가져와 내 발톱에 바르는 그는 아주 흥미롭다는 듯 외친다.
“엄마 발 너무 예쁘다!”
각질이 일어나 딱딱하고 거칠어진 발가락을 작고 통통한 손으로 잡고선, 차가운 매니큐어를 발톱과 발가락 구분 없이 덕지덕지 바르며 뿌듯해하는 얼굴이 눈은 감고 있지만 다 보인다.
그다음은 메이크업 차례.
그녀가 먼저 본인의 립밤과 로션을 나에게 발라준다 거절할 틈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누나의 화장품을 가져와 내 눈두덩이와 애교 살 밑, 광대뼈 근처를 열심히 두드리고 바르고 덧칠한다. 그리고 본인들 태블릿으로 내 얼굴을 찍는다. 킥킥거리는 소리, 그들의 진지한 숨소리가 섞여 내 귀와 코로 들어온다.
화장품을 노란 침대 시트에 흘려서 혼나고 물티슈로 닦는 둘째의 볼과 코가 시무룩하다.
괜히 또 미안해서 “화장 예쁘게 해 줘서 고마워.” 하니 금세 활짝 웃는다. 태블릿 속 사진을 보니 눈은 보라색 섀도에, 다크서클을 연상시키는 칙칙한 언더 와 화룡점정으로 새파란 에메랄드색으로 두껍게 올린 볼터치, 아니, 광대뼈 터치….놀라운 화장법에 빵 터진다.
엄마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신난 그와 본인의 화장 브러시가 더러워져 화가 난 그녀는 포기하고 다시 내 머리를 빗기 시작한다.
그쯤 어디서 쿵쾅쾅 소리가 난다.
갑자기 스무 걸음도 더 된 곳에서 자기보다 큰 기타를 가져와 연주하기 시작한다.
누나는 질색을 하고 나는 놀란다. 그리고 걱정한다. 왜냐면 그가 침대 끝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누나가 자꾸 “밑에 내려가서 연주하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그는 서운한 티를 내며 말한다.
“엄마는 노래 좋아하니까, 내가 노래 들려줄 거야.” 누나의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며 〈나비야〉를 부른다.
가사도, 연주도 엉망이지만 피곤하고 행복한 어미는 그냥 포기하고 눈을 잠시 감았다가 깼더니 그녀는 곧 지루해 방을 나갔고, 둘째도 기타를 가지고 나가 퇴장했다.
그날 저녁 나의 허리를 마사지해 주는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들이 난장판으로 만든 거실을 보며 감탄한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그들이 고요히 잠든 밤.
기타는 제자리에 조금 아슬하게 올려져 있고,
나는 그녀에게 용돈을 주는 걸 까먹었다는 걸 기억해 냈지만 그녀는 까마득하게 잊은 채 꿈나라에서 놀고 있다.
나의 애착 인형들의 온기를 비로소 그들이 잠든 후에야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