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을 닮은 압구정의 오후. 한때 서울의 미래를 그렸던 아파트 단지는 이제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시간의 흔적을 머금고 있다. 벚꽃이 아스팔트 위로 흩날리던 어린 시절, 이 동네의 집들은 막강한 ‘강남의 상징’이었고, 어른들 입에선 “압구정”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꿈과 부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그곳에서는 또 한 번 새로운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다린 재건축의 순간이 열리면서, 그 변화의 중심엔 ‘분담금’과 ‘용적률’이란 조용하지만 거대한 수치들이 존재한다. 작은 평형에서부터 거대한 펜트하우스까지, 각자의 선택과 운명은 저마다 다른 새 아파트의 설계도 위에 새겨진다.
압구정 2구역, 한때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던 이곳의 분담금은 이제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삶의 무게가 되었다. 펜트하우스를 원한다면 최소 166억원, 그에 못지않은 대형 평형들도 26억~42억원이라는 숫자를 넘어선다. “이제는 돈 있어도 마음 놓고 꿈꾸기 힘든 자리”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곳의 새로운 집 한 채에는 세월과 이상, 그리고 자본의 논리가 고스란히 깃들었다.
하지만 그 수치 앞에서도, 이 도시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과거 영광의 잔재라 말하기도, 누군가는 ‘내 집’에 대한 마지막 욕망을 불태우기도 한다. 건설사는 분담금 납부를 유예해주겠다며 새로운 제안을 내놨지만, 오래된 입주민들은 평형을 줄이고 싶어 하고, 미래를 보는 젊은 투자자들은 오히려 큰 평형에 더 큰 꿈을 실어본다.
분담금 못지않게 중요한 키워드, 바로 ‘용적률’. 이 값이 높을수록 아파트는 더 높이, 더 밀도 있게 올라간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극적으로 변하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랜드마크 단지는 다시 한 번 서울의 야경에 새 페이지를 더한다.
그 뒤엔 한 평 한 평에 쌓인 계획과 허가, 희망의 숫자가 있다. “용적률 완화”라는 행정의 결정 한 줄이, 또 다른 수십 억의 가격표로 돌아오기도 한다.
결국 압구정 재건축을 둘러싼 분담금·용적률·사업성의 논리에는, 가족의 시간과 동네의 역사가 한 칸씩 자리잡는다. 누군가는 지나간 유년의 골목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이 새로운 공간이 서울의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길 바란다.
재건축은 건물이 바뀌는 일이지만, 동시에 도시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삭막한 숫자 사이에, 오래된 집을 부여잡은 마음 하나, 미래를 그려보는 꿈 하나도 함께 새겨진다.
오늘도 압구정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무겁게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