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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의 원형, 농부

by 수근수근

수근수근문화일기

일시 : 2025년 5월 10일(토)~11일(일)

장소 : 강원도 영월

비닐을 반쯤 걷은 밭

지난 주말, 영월에 다녀왔다. 영월은 나의 고향이자 내가 태어난 곳이다. 시골집의 작은 방에서 태어났으니, 주민등록상의 본적도 영월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자란 곳은 아니다. 다만 어릴 적 방학마다 한 달 정도를 부모님은 시골에서 보내게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영월은 ‘나의 고향’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아버지께서 도시생활을 접고 귀촌하신 곳,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어머니에게 조그마한 땅을 남기신 곳. 그러한 농지가 있는 곳이 바로 영월이다. 그렇게 일 년에 서너 번 영월을 찾는다. 이번 방문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영월을 찾았다.


돌아보면, 이런 방문도 벌써 햇수로 오년째다. 일 년에 서너 번, 계절이 바뀔 즈음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와드린다. 다녀오고 나면 일주일은 근육통과 함께 보낸다. 농사일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반복되는 고된 노동은 회사 업무에서 쓰지 않던 몸을 사용하게 하고, 체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지난해도 들깨농사 지었고 올해도 들깨를 심을 예정이다. 봄이 되었고 겨우내 덮어두었던 비닐을 걷고, 땅에 퇴비를 뿌렸다. 특별한 기계도 없이, 손과 허리, 그리고 어깨를 써가며 이틀간 농부가 되었다. 별다른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지만, 계속되는 불편한 자세와 무게는 온몸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땀 흘리며 일을 하던 중 문득 떠올랐다. 내가 강의 때 자주하는 도입부분이 '문화(culture)’라는 단어의 어원이 라틴어‘농사(cultus)’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경작하고 재배하는 것, 노동을 통해 생산물을 키워내는 것이 바로 문화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부는 문화인의 원형일 수 있지 않을까. 문화원에서 일하고 있는 나 역시, 그날만큼은 농부와 다르지 않았다. 땀을 흘리고, 묵묵히 땅을 일구며, 씨앗을 뿌릴 자리를 마련하는 농부였다.


문화도 결국은 농사와 닮아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단단하게, 매일 조금씩 이어지는 작업이고 결과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농부와 문화인, 두 존재는 역시 성실하게 쌓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무엇보다도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시간 속에서 쌓이고, 의미를 얻는다. 때로는 그 시간이 수십 년, 혹은 세대를 거쳐야 문화로서 의미를 가진다. 문화란 시간 속에서 사람과 공간이 오래도록 엮이며 만들어내는 삶의 결과이다. 가끔은 농부가 되어보는 것이, 문화인의 원형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며, 그런 경험이 문화의 원형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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