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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다녀왔습니다

by 수근수근

수근수근문화일기 두번째

일시 : 2025년 5월 26일(월)

장소 : 서울시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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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집에서 쉬고 있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오랜만에 연락 온,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선배 형이었다. 내용은 부친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였다. 발인은 화요일, 장례식장은 서울이었다. 나는 이 소식을 나와 가까운 동기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 전달했고, 월요일 오후 장례식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 급한 일을 처리한 뒤 연차를 내고 서울로 향했다. 친구들과 장례식장 앞에서 만나 함께 조문을 했다. 그리고 막차 시간까지 자리를 지킨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 형은 졸업 후에도 1년에 한두 번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나름대로 꽤 가까운 사이였다. 오 년 전, 나의 결혼식에도 참석해 주었을 정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졸업한 지 15년이 가까워지면서 연락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내 친구들은 그 형과는 더 멀어진 사이였지만, 그날은 모두 조용히 모였다. 형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보자 보자 했는데, 이렇게 보게 돼서 미안하다.”


돌이켜보면 함께 조문 온 친구들도 졸업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만나던 사이였다. 같이 여행도 가고, 제법 자주 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보는 게 고작이다. 각자 결혼하고,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졌고, 함께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사는 지역도 모두 다르다. 그렇게 흩어진 우리를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한 통의 부고 문자였다.


문상 중에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근황 이야기다. 회사는 어떤지, 아이들은 어떻게 크는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대학교 시절 이야기로 넘어가고, 누군가 꺼낸 오래된 사진첩 하나가 추억을 불러온다. 그 시절의 답사, 엠티, 바보 같던 행동들, 즐거웠던 기억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선후배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문상을 다녀오고 나면, 문상이라는 행위는 단순히 슬픔을 나누는 문화를 넘어, 잊고 지냈던 관계를 다시 잇는 문화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삶 속에서, 조심스럽게 관계를 회복해 가는지도 모른다.


cy-000280.jpg 그 시절 싸이월드에 남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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