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질주

by 사과

천해로 58.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이름만으로는 바닷가 마을인지, 산속 지명인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영은 선생님의 장례를 치뤄야 했다.


[혹시··· 다른 신체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

주변을 빨빨대며 돌아다니고 있는 로봇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이 다 가져간 것 같아요. ㅠㅠ ]

로봇이 대답했다.


화면에 떠오른 눈물 이모티콘은 기계적이면서도 묘하게 사람의 흉내를 닮아 있었다.

로봇은 사람처럼 상황마다 다르게 이모티콘을 바꾸어 가며 사용하고 있었다.

정말 감정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프로그램된 흉내일 뿐일까?

작은 로봇을 믿어도 될지, 아직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잘은 로봇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안심시켰다.


[너···현장을 봤다고 했지? 혹시··· 다른 거 보거나 듣거나 한 건 없어?]

즉각적으로 대답하던 로봇의 화면에 처음으로 로딩창이 떴다.

그 몇 초가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 ㅇ - ㅇ ]

번뜩 눈을 뜬 로봇은 대답 대신 갑자기 어딘가로 달려나갔다.


로봇을 쫓아가 볼까 하다가 그냥 그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좀 들더라도 보육원을 다시 샅샅이 뒤져볼 것이다.

혹시라도 선생님의 신체 일부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시간을 찾아 헤메도 목 아래 신체 부위는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


담요를 들어 구덩이 안으로 선생님의 머리를 내려놓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지만, 현실감 없는 상황 때문인지 감정이 말라버린 건지 더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


모든 것을 끝내고 방에 돌아오자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몸과 정신이 동시에 무너져내리는 듯, 피로가 몰려왔다.


다음 미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방전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다.

침대에 살짝 기대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감정들은 제각각이었다.

분노, 슬픔, 죄책감, 허무함.

어느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 있었다.


[해야할 일이 있진 않나요? ㅇㅅㅇ ]

어느 순간 침대로 올라온 로봇이 물었다.

나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듯 했다.


‘설마 내가 듣고 있는 미션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의심스럽다는 내 눈초리에 로봇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빤하게 있다가 또 어디론가 휭 사라져버렸다.


'아, 지도!'

문득 공부방 책상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둔기로 써도 될 만큼 두꺼운 전국 지도였다.


아득하기만 했던 상황에 미세한 희망이 생기자 피곤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


공부방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책상 위에는 평소처럼 아이들이 쓰다 정리하지 않은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반쯤 마른 볼펜, 아이들이 그려둔 낙서 종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지우개 가루 등.


책장으로 가 한 켠에 꽂혀 있던 지도 책을 꺼내 펼쳤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훑어내려갔다.


2002년도 지도라 지금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전국의 모든 지역의 도로와 지형들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어 ‘천해로’를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워 보였다.

무수하게 펼쳐진 길 사이에서 나는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참 지도를 뒤지고 있을 때, 로봇이 다시 돌아왔다.


툭.


내 앞으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확인해 보니 영은 선생님의 머리에 붙어 있던 끔찍한 쪽지였다.


[이걸 왜 가지고 왔어. ...그냥 버려.]

[ - _ - ]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로봇이 종이를 뒤집어 보라는 듯 툭툭 쳤다.

뒷편 구석엔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레나는 감시자로서 자격을 잃었어.]


‘감시자···?'


이게 무슨 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영은 선생님이 감시자였다는 걸까?

대체 무엇을, 왜?


...지금 일어난 모든 일에 영은 선생님도 연관이 있다는 걸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간질에 말려들 수는 없었다.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정신마저 지배 당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온 것들을 스스로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맘 속으로 되내었다.


내가 쪽지를 보고 얼타고 있는 동안 로봇은 내가 보던 지도를 엄청난 속도로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화면 위에 달려 있는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규칙적으로 반짝거렸고, 그에 맞춰 종이가 빠르게 훅훅 넘어갔다.



로봇이 지도를 보는 동안 잠시 쉬려고 했는데, 몸을 엎드리는 동시에 로봇이 책장을 두드렸다.


[ ^-^ ]

익숙한 이모티콘.


로봇은 집게발로 지도의 한 구석을 정확히 짚었다.

거기엔 작게 ‘천해로 58’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로봇은 자축하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


천해로 58은 남쪽 끝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섬의 주소였다.



‘걸어가긴 불가능해. 배나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로가 멀쩡할 리도 없고, 설령 교통수단을 찾아도 운전을 할 줄 모르니까 막막하기만 했다.


‘어떻게 가야 한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또다시 툭, 로봇이 내 앞으로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하늘색 파일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파일을 열어보는데, 그곳엔 너무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

볼이 통통하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사진 옆 칸엔 텅 빈 정보들이 있었다.


생부: 미상.

모: 미상.

하지만 주소 칸만은 분명하게 기록돼 있었다.


‘천해로 58.’

[이 주소가 왜 여기에···?]

로봇은 대답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카메라 속 빨간 신호만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도대체 천해로 58과 나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보육원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곳일까?

보육원 이전의 기억은 너무 어렸을 때라 그런지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가기만 하면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방을 꺼내들고 이곳저곳을 돌며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통조림, 유통기한이 애매한 과자 봉지, 생수병 몇 개, 간단한 소독약과 붕대, 손전등과 건전지.

그리고 지훈이가 늘 쓰던 공책과 펜도 조심스럽게 넣었다.

생존에 필요한 짐을 꾸리며 다시는 이곳에 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졌다.


‘혼자서 갈 수 있을까?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혹시나 싶어 건물을 한 번 더 돌아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어딘가로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다녀올게요. 두렵지만 끝까지 가볼게요.’

영은 선생님 묘지에 절을 올린 후, 무거운 가방을 들쳐 멨다.


보육원의 작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했다.


[미오랑 같이 가요! ^-^ ]

로봇은 나를 따라왔다.

'로봇과 함께 갈까?'하는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생존이 말고 따로 할 일이 남아있었다.

혹시나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로봇이 큰 도움이 될 것이므로.


[아니야. 넌 여기 남아. 혹시 다른 생존자를 만나면 도와줘..]

로봇은 우리의 마지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악수하듯 로봇의 집게 살짝 잡고 흔들었다.


[또 보자! ...미오!]

미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어디론가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이젠 정말 떠나야 했다.


보육원 문을 나서자, 세상은 무너진 잔해로 가득 차 있었다.

도로는 끊기고, 자동차들은 여기저기 뒤엉켜 불에 타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쓸만한 차를 찾아 헤맸다.

운전 면허는 없었지만··· 주인을 잃어버린 차를 잠시 빌려 다니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차 안은 대부분 시체로 가득했고, 제대로 굴러갈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왔다.


길바닥에 잠시 주저 앉아 가방에서 물을 꺼내 최소한으로만 목을 축였다.

이대로 걷기만 하다가는 천해로에 닿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필요해.’


그때 멀리서 저음의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가까워지는 진동은 실제임을 증명하듯 으르렁거렸다.


“부우우웅—”

주변을 둘러보자, 도로 끝에서 노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광기를 품은 듯 질주하고 있었다.

흙먼지를 가르며, 부서진 차들을 요리조리 피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끼이익—!”


차는 내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췄다.

타는 듯한 냄새가 퍼졌다.


나는 숨을 고르며 차를 응시했다.

‘설마··· 다른 생존자?’


“덜컥.”

조수석 자리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어? 어야! (어? 뭐야!)"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로봇 미오였다.


[안녕하세요, 미오예요. ^ㅇ^ ]


[네가··· 어떻게···?]


[미오는 당신을 돕겠다고 결심했어요.]

로봇의 불빛이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차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내가 타자마자 문은 자동으로 닫혔고, 빠르게 잠겼다.


언젠가 이 상황을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결말을 향해 달려나가도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부아앙-!”

차가 미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천해로58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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