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아리

by 사과

달리면 달릴수록 희망이라는 것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듯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참혹한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안과 바깥을 채우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시체들이었다.

남녀노소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개나 고양이, 새 같은 동물들조차 예외가 아닌 듯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에겐 언제나 적막했던 세상이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고요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에너지, 움직임에서 나오는 활기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고요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차는 거칠 것없이 도로를 달려나갔다.


“덜컹-”


물컹한 무언가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차가 무언가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피와 살점이 창문에 튀었다.

심장은 덜컹이는 차체에 맞춰 쿵쿵 요동쳤다.


[드라이브할 때 듣기 좋은 노래를 틀어드릴까요? ^-^ ]

조수석에 앉아 잔뜩 움츠리고 있는 나와 달리 로봇은 신나보였다.

내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듯 했다.

애초에 내 허락은 필요없었을 지도 모른다.

음악을 이미 튼 건지 로봇이 꿈틀꿈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쟨 도대체 정체가 뭘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로봇이 구해온 차에 무임승차한 것은 나였다.

너무 염치없는 듯 해서 그만 입을 다물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겐 이름 모를 시체이지만, 저들도 어느 누군가에겐 영은 선생님, 지훈이처럼 더 없이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창밖에서 눈을 떼고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며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여기서 잠들면 끝이야. 안 돼.’


정신을 차려야 했다.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볼펜으로 도로 위를 따라갔다.

현재 위치를 짚어 보려 했지만, 차가 방향을 틀 때마다 속도를 높여 몸이 쏠렸고, 풍경만으로는 현재 위치를 짚을 수 없었다.


“끼이익—!”


갑작스러운 브레이크에 몸이 앞으로 쏠렸다.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차가 우뚝 멈춰 섰다.


작은 휴게소 앞이었다.

전쟁이라도 난 듯 식당가의 전면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고, 안쪽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갈까요? ^0^ ]

미오의 화면에 글자가 번쩍였다.


‘쟤도 충전식인가…?’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봇은 차에서 내려 어딘가로 빠르게 사라졌다.

나도 몸을 풀 겸 차에서 내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


혹시나 식량 같은 것을 비축해 둘 수도 있을 것 같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썩은 냄새로 코가 아릴 지경이었다.

음식이 썩은 건지 시체가 부패하는 건지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맨 안쪽에 있는 편의점은 매대가 다 쓰러져 있었다.

물건들이 사방으로 굴러다니고 있었고, 곳곳엔 굳은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쓸만한 물건들을 주워 담으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데 내 앞으로 통조림이 또르르 굴러왔다.


‘?’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로봇의 장난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시 걸음을 떼자 또 다른 통조림이 내 발 끝에 멈췄다.


“우우야!(누구야!)”


내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렸다.


통조림이 굴러온 곳을 따라가 보니 매대 몇 개가 한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설마…?’


쌓여있는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그 밑에 깔려 있던 노인이 드러났다.


‘생존자다!’


얼굴은 피에 얼룩져 있었고, 입술은 터져 말라 있었다.

근처에 있던 물병을 주워 노인의 입술을 적셔주었다.

앙상하게 마른 노인은 왼쪽 손만 간신히 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은 내 손을 붙잡고는 고맙다는 듯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노인의 눈에서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아이 아요.(같이 가요.)”


주웠던 물건들을 바닥에 버려두고 조심스레 노인을 업었다.

노인은 고통스러운지 미간을 찌푸리며 끙끙거렸다.

다행히 생각보다도 훨씬 가벼웠다.


한 발짝 걸음을 떼는데 로봇이 다가왔다.


[당신 뒤에 있는 건 뭐예요?]


어떠한 이모티콘도 없었다.

카메라 불빛이 붉게 깜박였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로봇에게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었다.

수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노인을 안전한 차 안에 데려다 두는 것이 우선인 듯 했다.

출입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빤하게 보고 있던 로봇은 더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은 순간, 노인의 몸이 크게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미약하게나마 등 뒤에서 느껴지던 노인의 호흡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이 죽었다.’

직감이었다.


노인을 바닥에 눕히고 맥박을 쟀다.

예상대로였다.


‘갑자기 왜?’


매대 밑에 깔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통조림을 굴려 자신의 위치를 알린 사람이다.

누구보다 살고 싶어하던 노인이 이렇게나 갑자기 죽어버리다니, 몸이 많이 상하긴 했지만 당장 숨이 끊어질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멀리서 로봇이 방긋방긋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 ^-^ ]


로봇은 노인을 스캔하더니 말했다.

[외상으로 인한 어깨 외 8군데 골절, 쇼크로 인한 사망.]

다시 눈 앞에서 죽음을 마주하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로봇은 태연했고, 오히려 즐거워 했다.


로봇이 넋이 나간 나를 톡톡 두드렸다.


[노인과 동행하면 생존률이 크게 떨어져요. 운이 좋아요! ^-^ ]


로봇의 웃음을 보자 내 안에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벌어진 모든 일들이 로봇 때문인 것처럼 떨어져 있던 것들을 주워 마구잡이로 로봇을 향해 던졌다.


“으아아아!”


로봇은 최소한으로 움직이면서 내가 던지는 모든 것들을 쉽게 피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 했다.

털썩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로봇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화면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노인의 시신이 눈앞에서 빳빳하게 굳어갔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가슴이 미어졌다.

식어가는 노인의 시신을 멍하니 내려다 보고 있는 동안, 로봇은 뒷모습을 보이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


다시 차로 돌아왔을 때, 로봇은 없었다.


‘곧 돌아오겠지.’


그건 로봇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분노를 표출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 뿐이었다.


만만한 로봇한테 애꿎은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비겁한 나의 모습에 부끄럽기도, 머쓱하기도 했다.


나와 함께 다니는 로봇은 그저 고철 기계가 아닌 감정을 아는 로봇이다.

분명 나의 행동에 상처 받았을 것이다.


돌아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천천히 풍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기판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핸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길을 꺾었다.

도시는 잿빛으로 물들어가고, 창밖 풍경은 점점 낯설어졌다.


‘어디로 가는 거지?’


운전석으로 건너가 차를 세워보려 했다.

누를 수 있는 버튼을 모두 다 눌러보았지만, 차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 송풍구에서 나온 흰 연기가 차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설마 …가스?’

급하게 코와 입을 막아봤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 돼… 잠들면 안 돼….’


하지만 의식은 저항하지 못하고 깊게 가라앉았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차가 아닌 동굴 속에 쓰러져 있었다.



물속에 가라앉은 듯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바위 틈에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도망쳐야해!’


나는 비틀거리며 빛을 향해 다가갔다.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 내 손등 위에 차갑게 손을 올렸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피부가 백옥처럼 창백한 여자가 서 있었다.

어둠과 섞여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만 머리칼, 뿌연 눈동자.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어떤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여자의 존재만으로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가면 안 돼요.”

그녀의 말이 또렷이 읽혔다.


나는 얼어붙은 채 수화로 물었다.

‘누구세요?’


여자는 여유롭고 인자한 미소로 대답했다.

“나는 이 낙원의 주인, 아리예요.”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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