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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Sep 12. 2024

아이들의 목소리

독서교실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처음 하는 내 이름을 내 건 사업이었기에 매일매일 열심히 준비하고 책을 읽었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의 책들 위치를 거의 외울 만큼 어린이 책을 읽었다. 

지금도 어린이 책만 읽으며 지내고 있어서 가끔 어른들 책을 읽으면 낯설다. 

'뭐 이리 어렵게 써놨어?' 이런 생각이 들기도. 

창작 이야기는 어른 것이 더 재밌고, 고학년 동화와 청소년 소설은 어른 것과 다를 게 없이 읽으면 감동이 있고 좋다. 어떤 동화는 읽고 오열하기도 했다. 입틀막 하며.

그 정도로 아이들 책이 재미있다. 그중 더 좋은 점은 비문학을 읽을 때 드러난다. 어려운 주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이 담백하다. 어려운 단어도 없다. (어른 수준에서)

책 읽기가 부담스러운 분들은 어린이 도서로 시작하길 추천한다. 


그렇게 수업을 하면서 절반의 시간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어찌나 말을 많이 하는지

나의 뇌를 풀가동하는 시간이 바로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두 명이 또는 세 명이 동시에 말하기도 한다.  내가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저쪽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학년 친구들은 기다려 달라고 말해도 기다리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말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모두 내 몫이다. 그러니 내 두뇌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으면서 리액션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그럴 때 어울리는 사자성어 혼비백산. 그래서인지 그렇게 수업을 하고 나면 너무나 피곤하다. 배터리가 나간 것 같다. 


아이들이 아무 얘기나 하는 것 같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감추어서 한다. 본인의 의도나 감정을 드러내며 말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야 한다. 

삐딱한 말은 바로 누군가 때문에 속상하다는 의미다. 나에게도 칭찬을 해달라는 의미다. 

이번 여름은 무지 덥고, 무지 힘들었다. 1년째 나와 함께 한 아이들은 익숙하고 편해지니 내 말을 듣질 않는 통제불능이 되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느라 내 얘기는 소음이 되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언젠가 한 아이에게 내가 화를 냈다. 그 아이가 한 행동과 말이 잘 못되어서 더 이상 계속 두고 볼 수 없어서 선생님도 화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난 뒤 그때를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니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없던 여유가 생긴 탓도 있어서겠지만, 그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면서 화를 냈던 게 미안해졌다. 왜냐하면 난 어른이니까. 

오늘 한 친구가 "저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들어보니 선생님께 혼났다는 것이다. 

"영어 시험지에 뜻을 안 적었거든요. 선생님이 너 왜 뜻을 안 적었어? 집에서 적어와."

라고 했다는 거다. 저는 안 적었으니 적어오라고 한 것 아닐까 생각되지만, 이 친구에게는 혼난 느낌이 강했나 보다.

 "뜻 적는 걸 깜빡한 모양이구나. 시간이 늦었으니 이건 집에서 해와야겠구나."라고 따스하게 말해주길 원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따뜻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친 것 같아서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다시 해보자 라는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해볼 마음을 갖기도 하고, 꿈을 키우기도 하니까. 

언제나 "넌 할 수 있어. 넌 잘할 거야."라고 말해주기! 

요즘 내가 많이 하는 말이 있다. 

글쓰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그래, 글쓰기 싫지? 하기 싫지만 오늘도 힘을 내서 조금씩 쓴다면 너의 내일이 빛날 거야."


바로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모두 글을 잘 쓰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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