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야기 안에서 무엇을 얻는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는 만들어졌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또 누군가는 직접 만들어내고 거기에 덧붙이고 하면서 전해졌다.
싫증난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이야기만큼 좋은 것도 없다.
이야기는 있을법하면서 느꼈을 법하면서 내가 경험한 듯한 것에
내가 꿈꾸는 것, 내가 기대하는 것을 함께 섞어서 비벼서 내놓다가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이야기를 끝내면 된다.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지어서 해줄 때 그렇게 했다. 끝말잇기를 하듯이
말도 안 되지만 끝없이 얘기해 줬다. 그러면 아이들의 반응은
두 눈을 나에게 고정하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집중했다.
그리고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또 해줘!"라고 했다.
자신들의 이야기와 너무 비슷하다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개입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내가 지금 네 얘기와 내 얘기와 누군가의 얘기를 섞어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오마카세 주인처럼 있는 재료로 즉석 해서 만들어주는 이야기~
지금 우리 아이들은 게임에 빠져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한다. 레벨을 올리려 온 생각이 게임으로 가득해졌다. 나도 너무 바쁜 일과 수업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다른 이야기를 찾아 헤맨다.
왜지?
이야기 안에 무엇을 찾으려고? 누군가 이야기 안에 감동을 숨겨놨거나 내 삶의 문제를 풀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런 적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아이들이 게임 레벨을 올렸을 때 감동과 감격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듯
나도 이야기를 통해 느꼈던 감동과 눈물로 내 문제들을 씻어버렸던 경험들 때문인 것 같다.
그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의 여러 가지 풀리지 않는 난제들을 갖고 있다. 풀렸음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잊을만하면 떠오르고 떠나지 않아 괴롭게 하기도 한다.
모든 문제와 숙제를 잊게 하는 것은 내가 실을 가지고 전체를 꿰뚫었을 때이거나 전체를 위에서 올려다볼 때이다. 그런 관점과 생각을 계속 갖고 싶으나 그게 참 오묘하게도 그 비밀의 문들이 가끔씩만 열린다.
상상해 보라.
어떤 문이 자동으로 10초에 한 번씩만 열린다.
그 문을 지나가면 또 다른 문은 8초에 한 번씩 열린다.
그런 문이 여러 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다. 한 10개쯤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문들을 통과해서 지나가야만 한다.
그 문들을 기다렸다 지나가야 하지만,
모든 문들이 내가 도착한 타이밍마다 열려서 1초의 차이로 가까스로 열리고 닫혀 열개의 문을 한 번에 지나서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탄성과 함께 외침이 들릴 것이다.
"해냈다! 이게 가능하다니! 놀라워!"
하지만, 좀 지나면 그 감격은 금세 잊힌다. 하지만, 그때의 짜릿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진다.
그게 바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찾으려는 이유와 비슷하다.
오늘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찾아 구석구석 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