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떤 아이였을까?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서 이혼숙려캠프

by 그래그래씨


누가 그를 괴물로 만들었을까?



어릴 적, 남편의 엄마와 아빠는

매일 싸웠다고 한다.

칼을 든 아빠의 모습까지도…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인에게

그 정도로만 말했다.


물론,

나에게는

그 모든 게

비밀이었다.


다른 이에게

조금 흘린 이야기.

그걸로 나는

그의 어린 시절을

조각조각 상상했다.


결혼 초, 그의 모는

우리 아버지를

‘노안’이라 비웃었고,

옆집 성실한 청년을

‘돌대가리 고졸’이라 깎아내렸으며,

동네 아주머니들에겐

‘무식한 여편네들’이라

혀를 찼다.


그리고

내 첫째 아들을

“외할아버지 닮았다”며,

갓 태어난 아이를 보자마자

눈을 돌렸다.


구청 공공근로 중인 남편의 모는

본인을 공무원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며,

백수인 본인 남편을

큰 사업가라고 떠벌렸고,

큰아들인 내 남편의 직업을

본인 남편인 양

자랑해 댔다.


자신은 지혜가 있어

늘 사람이 따른다고도 했다.


그런 말엔

“어머니는 늘 지혜가 있으세요”라고

남편은 거들었다.


하지만

남편의 정반대의 모습을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브라를 하지 않고

늘어진 메리야스를 입은 본인의 엄마의 모습을 보더니,

“저 젖을 먹고 자란 것 자체가

난 수치스러워, 역겨워.”라고 말했다.


혼잣말이었지만

내 귀에

생생하게,

아주 또렷하게

박혔었다.






남편은

어떤 아이로

살았던 것일까


늘 싸움 소리를 들으며

작은 방구석에

무릎을 껴안고 있었을까


칼을 든 그의 아버지의 눈빛에서

엄마를 지키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저 사라지고 싶었을까


집 안의 고함과

집 밖의 조롱 사이에서

자신을 지우며

자라는 법을 배웠을까


거짓을 말하는 엄마의 모습이

창피했을까,

그도 모르게

닮아갔던 걸까


그리고 지금,

나의 말에 침묵하는 그가

아직도 그 아이로

남아 있는 건 아닐까


그 아이는

어쩌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몸은 커졌지만,

마음은 그 방구석 어딘가에서

아직도 무릎을 껴안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미워하면서도

연민했고,


그의 변덕스러움에

늘 두려웠지만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문득,

나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나의 아이들의 눈빛 안에

남편의 어릴 적 그 아이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다시 묻는다.

그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리고

나는,

남편 어릴 적 그 아이를 품을 수 있을까?


그의 상처 위에

내 상처가 포개지며

우리의 삶은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다.


때로는

그를 감싸 안으려다

나 스스로 무너졌고,


때로는

그를 밀어내며

나조차 아이가 되어

엉엉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어른이어야 했기에


눈물을 삼키고,

침묵 속에서

그의 끝도 없는 분노를 견뎠다.


그리고 이제,

나는 선택해야 한다.


남편, 어른이 되지 못한

그 아이를 품을 것인지,

아니면

그 아이와 함께

나도 고장 나버릴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다만,

나의 아이들만은

늘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상처를 숨기기보다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거짓된 자랑이 아닌

작은 진심으로 빛나는 삶을,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묻는다.


남편, 그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리고 나는,

그 아이를

어디까지 품을 수 있을까.









이 글은 제 안의 오래된 질문이자,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상처 위에 상처가 포개진 삶 속에서도

아이들만큼은 사랑 안에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조용히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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