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치고 장구 치고, 이혼숙려캠프
분노는 누구를 향할까?
올해 초, 차를 폐차될 정도로 큰 교통사고가 났다.
온 가족이 차에 타고 있었고,
그 순간에도 남편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본인의 그 목소리가 잔소리가 아닌
애정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가정을 위한 조언이라 여기며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는 좁은 공간,
숨조차 턱턱 막히는 차 안에서 그의 말은
나에게나 아이들에게도
공포였다.
이미 감정은
파편처럼 흩어져
차 안 가득 날카롭게 흘렀다.
그러다 쾅—
쇠가 부딪히는 소리.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멈췄다.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마침내,
그동안 눌러왔던 분노를 그에게 쏟아냈다.
그때가 유일했다.
마음껏 분노할 수 있었던 순간.
그가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살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분노를 거두지 않던
그의 굳은 얼굴이
아직도 기억 속에서 겹쳐진다.
우리는 다행히 무사했다.
하늘에 감사했다.
감사할 일이 없던 수많은 날들 속에서,
감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나는 바랐다.
그날의 사고가
그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그저 잠시라도,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전날의 늦은 귀가와 수면 부족을 탓했다.
늦은 공연은 내가 보자고 한 것이었고
우리는 밤 열 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
분노의 화살은 나를 또 향했다.
그는 원래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고 했다.
만약 결혼 전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사람이다.
결혼 후, 3년쯤 지나서야
나는 그를 조금 알 수 있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속인 게 아니야.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야.”
말할 수 없는 삶을 이 사람은 언제부터 살았던 것일까?
내가 봤을 때,
속였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조차도
본인 자신은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침묵으로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해 왔다.
그러면서도
그가 내뱉는 말들 속에는
늘 옳고 그름이 있었고,
그의 세계에서 나는 자주
“틀린 사람”이 되었다.
그의 침묵은
배려가 아니었고,
자기 검열이자 회피였다.
나는 궁금했다.
이 사람은 언제부터 자신을 숨기는 삶을 살아왔을까.
누가 그의 입을 막았을까.
어떤 시절이
그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걸까
그의 침묵은 늘 나를 틀린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끝내 해명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그 침묵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그의 침묵은 늘 나를 틀린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끝내 해명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그 침묵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두려움이었다는 것을.